세월이 눈을 열어주기도 하지만, 두려움 없는 경건한 마음이면 눈을 감고 있어도 그 빛이 보인다네 (113쪽) (아내 희순이 첫 딸을 낳아 병원에 갔을 때 장인어른이 용준에게 해 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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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 가까이 되는구나.

김정현의 [아버지]를 읽던 때가…….

그때 우리 아빠는 엄마 먼저 여의시고  몇 년째 혼자 사셨을 때였다.

남편 출근하면 나도 만삭인 몸으로 아빠네집으로 출근 하여 아빠를 찾는 전화를 늘 내가 먼저 받았다.

그때는 몰랐다.

사람人의 의미를…….

엄마가 안 계셔도 아바 혼자 사시는데 문제가 있을 줄은 몰랐다.

아빠가 엄마외의 다른 여자를 만난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그게 아니란 것을 한참 후에야 알았다.

아빠에겐 우리 5남매가 해 드릴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고

아빠의 외로움은 더 커지고 있었다.

 

그때쯤이었다. 김정현님의 [아버지]를 읽었던 때가…….

나는 진즉 아빠에게 또 하나의 인연을 만들어 드렸어야 했다는 생각과 이젠 너무 늦었다는 생각과 아빠를 잘 모셔야한다는 생각이 한꺼번에 들면서 참 많이 울었다.

  

 김정현과 같은 시대에 태어나 학교를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어 그의 작품에 쉽게 동화되고 느껴진다.

아빠는 하늘같고 큰소리 한 번도 내지 않고도  눈 한번 껌뻑하심으로 집안을 평정하는 분이었는데 아빠를 무서워하면서도 나는 아빠 무릎에서 놀고먹고 잠도 잤다.

 

철도 교통의 중심지 영주에서 나름 수재로 인정받으며 미래를 꿈꾸던 용준은 제대를 조금 앞두고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신다. 용준은 제대 후 복학하여 꿈을 향하여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용준은 복학도 미루며 가장이 되어 아버지의 가업을 잇는다.

가끔 초등학교 동창들과 형제들까지도 그 옛날 아버지가 쓰시던 그대로 사진관을 운영하는 용준에게 손가락질하며 불평하지만 용준은 아버지의 숨결을 느끼기에 그대로 이어간다.

 

살면서 감당할 몫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할 몫, 사랑받을 몫, 다른 사람을 도와줄 몫,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몫, 내가 말 할 몫, 남의 말을 들어야 할 몫, 절약할 몫, 낭비와 허비할 몫…….

 

내가 아빠에게 받은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지만 그만큼 아빠를 잘 모시는 몫이 있었던 것처럼 용준이도 어릴 적 아빠의 사랑과 뒷받침을 충분히 받았기에 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모실  몫이 있었고 하늘의 그 뜻을 용준이 거스르지 않고 순종하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었으리라. 그래서  부부라는 이름으로 의지하며 곁을 지켜주는 희순을 만날 수 있었으리라.

첫 딸을 낳은 희순 에게 사랑한다고, 으스러져라 껴안아 주고 싶었지만 용준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손을 꼭 잡은 채 고맙다는 단 한마디.  

 

용준과 희순과 어머니의 삶은 식물인간이 된 아버지를 위해 사는 것일 뿐.

평소 좋아하시던 음식으로 정성껏 식사를 드리고 욕창이 나지 않도록 씻겨 드리고 자리를 봐 드리는 일상의 반복이 그들에게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슬퍼하지도 억울해하지도 힘들어하지도 않고 아버지가 불편한 것이 있을까 염려하며 힘 다해 모시는 모습은 얼마나 감동적인지…….

내 나이가 아직 젊었더라면 아버지가 너무 하신다…….어머니도 어쩌면 당신 욕심만 부려 아들의 희망을 포기하게 할까 야속해했을텐데…….여자 나이 40이 넘으면 시어머니 편을 든다더니 그 셋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평생 집안 살림밖에 하지 않으신 어머니가 아들 내외에게 보여주신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의 사랑과 가족에 대한 책임을 대신 보여주신 것은 아닐까?

 

젊었을 때의 우리 아빠 역시 하이칼라 머리에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긴 검정 코트를 입은 아빠의 모습은 그 시절 멋쟁이란 소릴 많이 들었다. 친구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건너편 저쪽에서 아빠를 발견하곤 손나팔로 아빠를 불러대곤 친구에게 우리아빠를 자랑했던 기억이 난다. 일흔이 넘어서도 주말이면 검정봉지에 면도기, 이태리타월 칫솔을 넣어 목욕탕에 가시던 아빠였는데 치매를 앓으시며 내 속을 가장 상하게 한 것이 옷 갈아 입는 것, 목욕하는 것을 싫어하시는 것이었다. 치매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평생의 모습과 너무 달라 큰소리로 아빠를 야단치곤 했는데 쓰러지시기 열흘 전부터 씻고 옷갈아 입는 것을 어찌나 열심히 하시던지…….어떤 땐 아침저녁으로 씻고 갈아 입으셨다. 그것이 아빠의 가실 준비였다는 것을 몰랐다니…….

의식 없는 용준의 아버지는 당신의 가실 것을 어머니를 통해 알려주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용준은 업종을 바꾸지 않을 뿐 아니라 아버지가 쓰시던 선풍기까지도 닦고 기름치며 어머니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데 정작 자신의 병을 느끼지 못했다.

이제 큰 딸이 고3인데…….간암이란 선고를 받고 자신의 초라함을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 끝까지 자존심으로 버틴다.

그리고. 죽기 직전 희순 에게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말하며 힘껏 안아준다.

 

나는 일란성쌍둥이다.

언니와 나는 25분 차이이지만 3초만 지나면 내가 몇 살 아래 동생 같다고 할 만큼 언니와 나는 다른 점이 많다. 가슴형인 나는 감정이 풍부해 울고 웃는 일이 죽끓듯 변덕스러운데 언니는 냉정하고 이성적인 머리형이다. 나는 싫고 좋은 것을 참지 못하고 바로 말하지만 소심하고 잘 삐지며 엄살도 심해 학창시절 개근상을 타본 적이 없이 자주 아팠다. 언니는 얌전하고 말도 없지만 용감하고 대범하기까지 해 아파도 정신게 태어난 줄 알았다.

 

[고향사진관]을 읽으며 용준의 아버지와 우리아빠의 삶을 비교하며 우리의 몫을 헤아려보며 용준이가 차라리 힘들어하며 가슴속의 화를 한번이라도 터트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 그것이 용준의 몫이었을까?

나는 자타가 인정하는 아빠 딸이고 아빠를 잘 모셨지만  아빠와 싸우기도 하고 아빠가 미울 때도 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작은 딸은 할아버지와 말다툼한 것 가슴에 담아두지 말라며 그것은 할아버지와 대화한 것이며 할아버지는 대화하고 싶어 엉뚱한 말씀과 행동을 하셨다는 것이다. 아빠를 생각하며 가슴에 한이 맺히거나 잘못 한 것은 많지 않다. 아빠의 가슴에 못 박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고 아빠 마지막 식사도 정성을 다해 차려 드렸다.

그때는 마지막인줄 몰랐지만, 그것이 얼마나 내게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실화이기에…….

부디 남은 어머니와 희순 씨는 남편과 아들, 시아버지와 남편을 잃은 슬픔과 고통을 서로 나누며 다른 사람의 위로와 동정도 마다하지 않기를 바란다.

 

삶…….

그것은 나 혼자만의 삶이 아니므로…….

사랑하는 사랑받을 가족과 이웃과 친구가 있으므로…….

그들에게도 나를 사랑하며 내 사랑을 받아야 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