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참 얄궂기도 하지...
도오루와 다카코. 서로 피하고 싶었던 사람과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게다가
3학년이 되어서는 같은 반이 되었다. 서로를 의식하지만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던
두 사람의 어색한 행동 때문에 오히려 몰래 사귀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까지 한다.  
  
그들이 아버지의 장례식에 처음으로 그 모습을 보였다. 
예상과 달리 초라하지 않고 당당한 두 모녀의 모습에 도오루는 왠지 모르게 위축되고, 질투를 느끼게 된다. 
한번도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장례식을 찾은 다카코는 작은 기대를 가슴에 안고 
피가 이어진 유일한 형제와 대면하지만 마주친 그 눈에는 싸늘함만이 느껴진다.
그때부터 다카코에겐 왠지 모를 죄책감이 가슴을 짓누른채 자리잡게 된다.
아무말이라도 좋으니,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가슴 한 구석에 있지만, 1년 동안 단 한마디도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스스로와 내기를 한다. 보행제가 끝나기전에 단 한마디라도 나누지 못한다면, 대화하는 것을 포기하겠노라고...
그리고 북고 보행제가 시작되었다.
시끌벅적 전교생이 모인 풍경은 우리네 모습과 그리 달라보이지 않다.
다만 1일동안 아침 8시부터 그 다음날 8시까지 80km나 달리는 야간보행제는 우리에게는 낯선 행사이다. 
매년 행해지는 북고의 이벤트로 단체보행제, 자유보행제로 나뉘는, 한마디로 고생길이 훤한 행사이지만 
도오루와 다카코와 같은 고등학교 3학년생에게는 추억을 남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다카코는 자신과의 내기에서 이길 수 있을까.
그들은 보행제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이전에 먼저 읽었던 온다리쿠의 소설들처럼 자극적인 해프닝이라던지, 갈등과 사건으로 빚어지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녀의 소재치고는 의외로 평범해서 좀 놀랍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녀의 책들 중에서 삼월은 붉은 구렁을 다음으로 내가 두번째로  좋아하는 책이 되었다.
밤의 피크닉은 고교의 전통인 보행제의 낮과 밤 속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편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알차고, 섬세한 글을 읽을 수 가 있었다. 특히나 길게 펼쳐진 낮과 밤의 풍경들, 그리고 그것에 따른 인물들의 심리변화가 잘 어울러져 눈 앞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보행제의 골을 위해 한걸음 한걸음 발을 내딛는 것처럼, 10대들의 내적인 성장과정을 천천히 지켜보고 있으면 나의 고교시절 또한 생각이 난다.  잊어버리고, 잃어버렸던 그 시절만의 추억들.
물론 고교생의 이야기라 하기에는 조숙해보인다.(온다리쿠 소설 속 주인공들이 대부분 그런편인듯.)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깊은 생각을 이끌어내는 모습은 보통의 또래같지 않게 꽤나 진지한 편이다. 특히 ’잡음’을 찾아볼 수 없는 도오루같은 경우가 그랬다. 남들과 다른 가정사로 인한 분노와 상처로 얼룩져 마음을 굳게 닫아버린 도오루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가끔은 그 속내를 드러내 주었더라면 하는(비중이 더 있었다면)...독자의 개인적인 안타까움이었다.^^;

마지막으로..
내게도 밤의 피크닉, 야간보행제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아마도 평생 가져갈 진한 추억이 되지 않았을까. 
뭐, 우리에겐 입시라는 골을 향해 매일 밤마다 남아서 공부를 하는(본인은 매일 다른길로 새곤했다) 야간자율학습이 있긴하다.(요즘에도 있나?) ^^;

소설, 밤의피크닉, 온다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