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훨씬 넘은 오래된 살인사건. 결국 용의자의 죽음으로 불가사의한 부분을 남겨둔 채로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유키호와 료지. 그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한 소녀와 소년이 있었다.

 

드라마와 영화를 먼저 접한 나로서는 놀랄 일이었다. 책 속의 그 어떤 부분에서도 "그 사건" 에 대해서 주인공 유키호와 료지 자신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며 그 둘의 접선의 흔적 같은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가는 그 부분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았고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내용으로 추리해가며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었을 것이다. 책을 먼저 읽을 걸 하는 아쉬움이 크게 들었다.

 

그 둘을 연관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라는 책과 '종이공예'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의 스칼렛 오하라처럼 타고난 미모와 매력으로 남자를 사로잡았던 유키호.

그 아름다움을 스칼렛은 허영심으로 채웠고 유키호는 자신의 목적을 위한 무기로 택한다. 

스칼렛이 타오르는 태양 아래 피어난 강렬한 美라면, 유키호는 어둠 속에서 간신히 살아난 美로 보인다.

그녀가 스칼렛이 되고 싶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 둘은 명백히 달랐다. 스칼렛은 자신의 뿌리에 대한 자긍심과 강한 생활력과 의지가 있었지만, 유키호는 어린 시절의 상처로 뿌리자체가 뽑혀져 나갔으며 돈의 집착, 인간을 향한 증오심이 강했다. 

그녀들의 헤어나오기 힘든 매력(어찌보면 마력)에 빠져버린 남자들 또한 존재한다. 스칼렛의 곁에는 그녀보다 훨씬 성숙되고 남성적이며 재력도 뛰어난 백마탄 왕자 레트 버틀러가 있었다. 그 둘은 운명처럼 만나면서 그녀가 위험에 처할때마다 항상 곁을 지켜주다가 비극적인 사건으로 그녀를 떠나게 되는 자의식이 강한 남자였다. 하지만 유키호의 남자, 료지는 그러지 못했다. 그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키호뿐이었고 온 몸을 다바쳐 무엇이든 다했기 때문에 비극을 불러온것이다.

 

종이공예를 즐겨하며 도서관을 다닌 료지는 분명 또래에 비해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한 소년이었다.

그런 그가 유키호라는 빛을 만들기 위해 어둠 속에서 살아가며 죄악을 저지를 때의 그 고통이란...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았던 료지의 불행한 인생과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또다른 피해자 유키호. 그 둘을 이렇게 만든건 어른들의 추악하고 이기적인 욕망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왜 보호 받아야할 아이들이 희생을 강요받고 상처를 받아야 하는걸까.

 

다른 소설을 봐도 히가시노 게이고는 독자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책을 읽어도 무언가 마음에 더 남아있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끊임 없이 드는 생각.

경찰인 사사가키가 그 둘을 놓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유키호와 료지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두 사람에게 행복했던 순간이 한번이라도 있었을까? 

유키호와 료지가 도서관에서 함께 책을 읽으며 어린아이다운 웃음을 짓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러나 역시 무엇을 생각해도 마음이 저리고 아프다.

일본, 백야행, 히가시노게이고, 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