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한숨에 다 읽고나니 어느새 어두워진 새벽이다. 여운이 길게 남아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문득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요시다 유이치 이 사람, 정말 살내음나는 책을 만들었구나. "

향수처럼 향기롭거나 꾸며졌다기 보단 말그대로 살내음이 나고 체온이 느껴지는 생생한 책이었다.

일그러진 사회의 한 모습을 보여주듯 소설 속 젊은 사람들은 비뚤어지고 위태롭다.

허영에 차있고, 인간관계를 쉽게 생각하고, 겉과 속이 다르며, 인생의 목표보다는 쾌락을 쫒는다.

반면 그들은 사랑을 받아온 자식이며  외로움이 많고 상처받기 쉬운 인간이기도 하다.

 "인간의 이중성". 그 분리의 경계선에서 유이치는 그 선을 넘었다.

살인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그런면에서 유이치를 보는 나의 눈은 냉정했다.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불행한 가정 형편에서 자라왔으며, 자신을 키워준 조부모를 향한 마음씀씀이 등의 이야기를 보면 그는 선천적인 악인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살인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만이 악인은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요시노와 그 친구들, 마스오, 미쓰요 등 많은 등장인물들 모두 

피해자이자 가해자, 악인이었다.

요시노를 죽인것은 유이치였으나 그에 못지 않은 악한 일을 저지른 이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은채 돌아다니는 것에 화가 치밀었다. 

그녀의 아버지 요시오 역시 그 장본인을 찾아가지만

그는 죽일 가치도 없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한때 용의자로 몰려 체포됐었던 후일담이나

요시노에 대해 함부로 떠들어대는 그를 보면서 참으로 구제받기 힘든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민으로 돌아서는 요시오의 뒷모습이 참으로 쓸쓸했다. 

 "요즘 세상엔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이 너무 많아.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은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어버리지. 자기에겐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니까 자기가 강해진 걸로 착각하거든. 잃을 게 없으면 갖고 싶은 것도 없어. 그래서 자기 자신이 여유 있는 인간이라고 착각하고 뭔가를 잃거나 욕심내거나 일희일우하는 인간을 바보 취급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안 그런가? 실은 그래선 안 되는데 말이야."

비참하게 끝날줄 알았던 유이치의 인생에 구원은 찾아왔다.

바로 미쓰요라는 여성을 만난 것이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함께 도망을 다녔던 미쓰요를  감싸기 위해 

사이코 살인마를 자청하며 끝까지 그녀를 생각하는 유이치를 보면서

끝까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 진정한 악인은 누구인걸까. 그들은 정말 용서 받을 길이 없는걸까. 

자신들의 인생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젊은이들에 비해
그들의 가족들, 인생의 경험자들은 마음이 따뜻하면서도 애잔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특히나 도시로 상경했던 자랑스러운 딸이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을때의 그 슬픔...

빗 속에서 딸을 찾아 울부짖는 요시오를 보면서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었다.

자식에게 버림받은 손주를 손수 키워온 유이치의 할머니 후사에.

그녀가 시장에서 스카프를 산 장면은 악인에서 가장 슬프면서도 인간적인 장면이었다.

작가는 끝까지 자신의 모습을 내비치지 않았다. 독자의 생각의 폭과 선택을 넓혀 주려는 의도이다.

중간에 삽입되는 등장인물들의 인터뷰식 서술 또한 신선했다. 소설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도 인간 내면의 진면모를, 악인으로만 치부되었던 인물들의 또 다른 모습들을 속속들이 알 수 있게 해주었다.

흡입력 있는 독서를 마치게 된뒤의 이 묵직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도 이것이 독서의 무게일 것이다.

대중성과 작품성 모두 갖추었다는 말은 과언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