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안방 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액자 속의 생생한 호랑이 그림을 보며 두려움을 느끼곤 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는 액운과 잡귀가 집안에 침범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염원을 담은 풍습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민화에는 호랑이(까치와 함께)가 많이 등장하는데, 용맹의 상징이었던 호랑이는 일제강점기와 산업화를 거치는 동안 밀렵과 서식지 및 먹이감 감소 등 생태계의 파괴로 인해 설 자리를 잃고 이 땅에서 명맥을 감추었다.

 그러나 이제 그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 하여 기억에서도 지워버린다면 우리나라 호랑이의 존재는 영원히 잊혀지고 말 것이다. 저자인 임순남 씨는 우리나라 호랑이를 연구하고 그 자취를 찾기 위해 애쓰는 분으로, 이처럼 소수이긴 하지만 이땅에서 사라졌다고 알려진 혹은 사라져 가는 동물을 찾아다니거나 그 명맥을 잇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이 그림책은 눈 덮인 산을 배경으로 호랑이 가족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으며, 책장 하단에 호랑이를 연구하기 위해 자신이 하는 일과 호랑이를 직접 보고 싶어 러시아로 가서 관찰한 일, 소망 등을 간단한 일기처럼 한 줄의 문장으로 기록해 놓았다. 간략하게 기술해 놓은 글이지만 그 글에서 우리나라 호랑이에 대한 저자의 열정과 신념, 안타까움과 호랑이를 보았을 때나 기쁨 등이 전해져 온다. 그림은 묵직한 느낌의 수묵화풍으로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자연의 풍경과 호랑이의 모습을 담았다.

 

 밤새 내린 눈으로 하얗게 변한 산에 아침이 오면 먹이를 찾아 모습을 드러내는 작은 동물들. 새끼 호랑이 세 마리-그 중 한 마리는 백호-를 거느린 어미 호랑이도 모습을 드러내고,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핀다. 접혀 있는 책장을 펼치면 스물네 개의 줄무늬가 있는 우리나라 호랑이의 모습이 드러난다. 새끼 호랑이들이 어미 호랑이의 보호 아래 장난도 치고 배불리 먹이를 먹으며 성장해 간다. 먹이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은 겨울에 자식들을 위해 열심히 사냥하던 어미 호랑이는 봄이 온 산에서 사람이 놓은 올가미로 인해 죽은 채 모습을 드러낸다.

 초록이 무성할 무렵 성장한 모습을 드러낸 세 마리의 호랑이, 용맹스럽게 늠름하다. 늑대, 호랑이, 표범 등의 크고 사나운 육식동물은 인간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탓에 제거 대상이 되었고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자연에서 한 종이 사라지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한 영향이 생태계 전체에 미친다. 이 그림책은 호랑이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건강한 생태계를 지켜나가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본문 뒤에는 "호랑이 아저씨가 들려주는 호랑이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다양한 이름(칡범, 갈범, 줄범 등)으로 불린 우리나라 호랑이의 모습과 습성, 역사적 기록과 흔적, 철책선 없애기 운동 등에 관한 글이 두 장 분량으로 실려 있다. 마지막 장에는 저자 자신이 호랑이 연구와 흔적을 찾기 위해 노력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적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 땅에 아직 호랑이가 살고 있을까? 비무장지대와 백두대간 근처에서 호랑이가 살고 있다는 증거가 발견되고 있다 하는데 모쪼록 우리나라 호랑이가 이 땅에 그 늠름한 모습을 드러낼 날이 멀지 않았으면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