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엄청난 폭설이 내리는 바람에 도시 지역은 교통이 마비되고 산간 지역 사람들은 고립되는 등의 큰 어려움을 겪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린 것을 처음 보았다. 아침에 일어나 온통 하얗게 변한 세상과 앞 집의 작은 지붕에 쌓인 눈을 보고 있으려니 즐거운 마음이 잠깐, 그래도 어른이어서 그런지 현실적인 걱정이 앞섰다. 출퇴근도 힘들고, 주문한 물건이나 책 배달도 늦어질 거고, 채소 값도 오를 테고, 농사 짓는 분들도 농작물이며 시설 피해를 입을 텐데...  

 눈이 많이 내리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람들뿐만 아니다. 산에 사는 동물들 역시 사방이 눈에 덮인 탓에 먹이를 구하기 어려워 사람들이 사는 마을까지 내려온다고 한다. 그런 동물들을 덫을 놓아 잡는 이들도 있겠지만 얼마나 굶주렸으면 인가가 있는 곳까지 올까, 안쓰럽게 여겨 먹을 만한 것들을 놓아 주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눈 내린 산골의 겨울 풍경과 그 곳에서 자연과 이웃하여 살아가는 할머니의 모습을 잔잔하게 담은 이 책은 생명을 사랑하고 살필 줄 아는 마음을 일깨워 주고 있다.

 감나무 골에서 할아버지를 떠나보내고 홀로 밭농사를 지으며 사는 할머니는 크게 욕심 부리지 않고 장대가 닿은 곳의 감만 따서 곶감을 만드신다. 오목눈이를 비롯한 여러 새들, 청설모, 너구리에게도 감은 긴 겨울 동안 먹을 수 있는 귀중한 양식이기 때문. 나무 꼭대기에 달린 감은 따기 어렵기도 하지만 까치밥이라 하여 새들이 먹을 양식으로 남겨두었던 우리 선조들의 인심이자 배려였다. 껍질을 깎은 감을 말리기 위해 실에 줄줄이 엮어 처마 밑에 발처럼 달아 놓은 풍경을 그려보고 있노라니 절로 쫀득쫀득하면서도 달짝지근한 곶감의 맛이 떠오른다.

 책을 보고 있으려니 예전의 친정집 뒷마당에 자리 잡고 있던 커다란 감나무가 생각난다. 아이들도 어렸을 때 가서 본 적이 있긴 하지만 오래 전 일이라 이제는 기억 속에 남아 있지는 않으리라. 이제는 감을 깍아 줄에 걸어 곶감을 만들 친정 부모님도 계시지 않으니 더욱 아련하고 그리운 광경이다. 편지 전하는 일이 좋다며 눈 쌓인 길을 달려 왔던 집배원 아저씨가 눈이 녹은 후 다시 곶감 할머니 댁을 찾은 모습을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든다.

  중반으로 접어들기 전에 딸이 잠시 맡긴 개(다롱이)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간 이어진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새들에게 먹이를 뿌려주는 할머니는 두엄간 근처에서 홀쭉하게 여윈 개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밥 한 덩어리를 주고 또 준다. 최근에 동물(개) 학대에 관한 기사를 본 터라 자신이 먹을 아침밥까지 내어 주고 추위에 떠는 개를 집에 들인 할머니의 모습이 더 진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동물의 생명도 사람과 다르지 아니 한데 아이든 어른이든 모든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가짐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 작품은 작가가 도시를 떠나 강원도 산골로 내려가 농사도 직접 지으면서 쓴 책이라고 한다. 작가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한 작품인지는 모르겠으나 산골에서 겨울을 나는 이의 소박한 일상과 고즈넉한 산골 겨울 풍경을 잔잔한 음성으로 전해 듣는 느낌이 든다. 이야기의 줄기가 할머니를 비롯한 감나무골 동물들의 겨울나기와 두 마리의 개가 친해지는 과정을 담은 두 부분으로 분산되는 느낌을 주는 점이 좀 아쉽게 여겨진다. 물론 이는 내 개인적인 평이고, 이 책을 보는 아이들 눈에는 처음에 거리를 두었던 눈이와 다롱이가 함께 뛰노는 모습이 그저 좋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