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복의 랑데뷰>와 <밤 그리고 두려움>의 작가 코넬 울리치의 또다른 작품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작품. 이 작가가 <환상의 여인>을 쓴 윌리엄 아이리시와 동일 인물인 것을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알았을 텐데- 책 표지 날개의 작가 소개글을 보다 놀란 거 보면- 시일이 지나면서 그새 잊어버렸나 보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천개의 눈으로 비유한 제목이 시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검색을 해보니 -시 자체는 이 작품과 동떨어진 내용-그런 시가 있긴 한 모양이다. 

 도시인의 절망과 공포가 드리워진 누와르적인 성향의 작품의 대가로 칭해지는 코넬 울리치. 중세 시대에나 통할 법한 '예언'이라는 소재를 도입한 이 작품 역시 어두운 분위기가 짙게 깔려 있다. 흑마술이나 예언 같은 비과학적인 것은 끼어들 여지가 없어 보이는 도시를 배경으로, 한 고비 넘겼는가 싶으면 또 다른 고비가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애태우게 만들더니 종국에는 한 남자에게 사형선고 같은 죽음이 예고된다.  

 시작은 옷에 떨어진 한 방울의 얼룩에서 비롯된다. 집으로 가기 위해 좋아하는 길로 가던 숀은 길에서 돈을 줍게 되고, 주변을 살피다 한 여인이 다리 난간 위에 위태위태하게 서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밤하늘의 별들이 두렵다는 이 젊은 여인, 질은 자신의 이야기들 들려주고 경찰인 숀은 질을 돕기로 한다. 물에서 건져주었으니 그 뒤를 책임져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끔 진을 몰고 간 것은 바로 예고된 죽음 때문. 진은 하녀를 통해 톰킨스의 예언을 듣게 되는데 결국 그 예고대로 진의 아버지 할란 레이드가 타려던 비행기가 추락하여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작가는 이 과정을 독자가 무슨 일인가가 벌어지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따라가도록 만들고 있다. 할란은 살아 돌아오지만 딸의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 싶어 하는 톰킨스라는 인물을 찾아 간다. 하지만 그것이 그를 죽음의 수렁으로 발목을 잡아끄는 계기가 될 줄 어찌 알았으리오.

 처음에는 톰킨스을 믿지 못하던 할란도 그의 예언들이 하나둘씩 맞아떨어지자 계속해서 그를 찾게 된다. 사람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하나를 알면 그 뒤가 또 궁금하고, 그 뒤를 알면 또 다른 것이 알고 싶어진다. 금전적인 이익-주식이나 복권 당첨 번호 같은-이 뒤따르는 일이라면 유혹의 힘이 더 강하지 않겠는가. 마침내 톰킨스는 삼 주 뒤, 사자 아가리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할란의 죽음에 대해 예언하다. 톰의 예언에 대해 자신은 믿지 않는다며 그토록 이성적인 태도를 보인 모습과 자신의 죽음이 예고되자 한 순간에 무너지며 오로지 시계만 바라보며 예정된 죽음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는 할란의 모습이 대조를 이룬다.

  이 작품은 죽음이 예정되어 있는 현실이 공포로 다가오는 과정, 그리고 공포가 한 인간의 내면을 얼마나 순식간에 무너뜨리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서서히 목을 조여 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절망감으로 인해 삶이 지옥으로 변하는 것은 한 순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중반부로 접어들어 숀과 경찰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뛰어들면서 이 예언이 과연 조작된 것인지, 아니면 정해진 운명인 것인지 헛갈리게 된다. 예고된 죽음을 막기 위해 경찰들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첨단 시스템을 이용하여 과학적인 수사를 하는 요즘의 수사방식과는 거리가 먼, 발로 뛰는 수사를 하느라 고분 분투하는 형사들의 모습에 살짝 웃음이 나온다.

 누군가가 미래를 알 수 있다는 유혹을 해온다면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어쩔 수 없는 호기심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알고자하는 욕망에 무릎을 꿇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어 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자 예정된 수순이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것은 미래를 모르기 때문이다. 내 미래가, 내 운명이, 내 죽음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면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멈출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다지만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통고받았을 때 담담하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표지도 작품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며 본문 책장 안쪽에 옅은 필체로 영문 제목을 표기한 편집 구성도 멋스럽게 느껴진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했는데 본문 뒤에 "코넬 울리치의 삶과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고통 받는 은둔적인 그의 삶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의 대표작인 블랙 시리즈 중에서 읽어보지 못한 작품들을 언제고 읽어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