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시가 넘어도 어둑한 겨울아침에 어둠속에서 불쑥 나타난 누군가에게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해가 일찍 떠도 이른 새벽에 사람을 마주치면 무섭다. 잔악무도한 범죄뉴스를 보면서 가방에 송곳이라도 가지고 다녀야 하나 생각한다.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가방에서 송곳을 꺼낼 수나 있을지 의심스럽다. 되레 나를 더욱 위험에 빠뜨리는 무기로 쓰일지도 모른다. 망상이 이어진다. 십년 넘게 가방에 잭나이프를 가지고 다닌다는 엘리자베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걸까? 책은 그녀가 왜 칼을 갖고 다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누군가를 찌르고 싶은 충동의 발로였는지, 불안에 대한 대비였는지 알 수 없다.

    엘리자베스는 어깨에 멘 가방을 몸에 바짝 붙이고 한쪽 손의 주먹을 꼭 쥐고 집으로 돌아온다. 손과 잭나이프에 묻어있는 피를 닦으면서도 그녀는 왜 피가 묻었는지 알지 못한다. 이후 그녀는 라스꼴리니꼬프처럼 심한 열병을 앓고 자신이 낡은 가죽점퍼와 스웨터를 입은 누군가의 몸을 잭나이프로 찔렀던 순간을 어렴풋이 기억해낸다. 칼에 찔린 피해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죽었을지도 모른다. 신문을 살펴보니 그런 소식은 없다. 지하철 역장에게 도움을 청해서 병원에 실려 갔을지도 모르고, 함께 있던 아내가 그를 보살피고 있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급기야 그녀는 그 남자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자신의 범죄를 조사하러 다니는 엘리자베스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 그녀는 청바지와 무채색티셔츠 한두 벌로 살아왔다. 외모에 관심이 없었던 것처럼 주변세계에 무감했다. 그런 그녀가 화장품과 스커트 등의 옷가지를 사서 변신한다. 직장동료들은 달라진 그녀에게 관심을 표하고 엘리자베스는 그들과 소통한다. 동시에 지하철역장, 내무부등을 찾아다니며 그날의 사건을 조사하며 남자를 찾는다.

    엘리자베스는 왜 피해자를 찾아다닐까. 피해자의 현재상태가 궁금한 것인지, 용서를 구하고 싶어서인지, 의도했던 범죄를 완성하고 싶어서였는지 알 수 없다. 결국 남자를 찾는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서로를 알아보지만 그날의 사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연애를 시작하는 남녀처럼 연락처와 이름을 묻고 만나기 시작한다. 피해자였던 세살은 급기야 엘리자베스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피해자를 찾은 이후 한참동안이나 엘리자베스는 벽장깊은 곳에 넣어두었던 잭나이프를 다시 갖고 나가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 자신이 칼로 찌른 남자와 동거를 하지만 여전히 공허하고, 자신에게 해를 입힌 여자를 마치 오랫동안 만나왔던 여자친구처럼 대하지만 더 강렬한 자극을 원하는 두 사람의 심리는 기묘하다.

    불안하고 메마른 마음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다름 아닌 우리들의 모습이다.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가 기이한 형태의 로맨스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건조한 문체 속에서 빛을 발한다.

잭나이프, 작가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