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인간중심주의의 시각을 버리고 다른 생명체와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의식을 바꾸어 나가야한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자연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애틋한 감정을 지녔던 이규보는 고려시대 문인이자 정치가였다. ‘내 몸을 집으로 삼은 이를 화롯불에 태우지 않고, 땅에 던져버리는 자비를 베푼다’고 이규보는 <이를 잡다>에서 노래한다. 지은이는 하찮은 미물과 짐승을 소중하게 여긴 시인의 태도를 말하면서, 귀찮고 해로운 벌레라도 거대한 우주 안에서는 그 나름의 존재의 이유가 있음을 지적한다. 이규보는 <이와 개에 관한 생각>에서는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생명은 모두 소중한 존재임을 일깨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을 하나같이 평등하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오늘날처럼 자연이 파괴되거나 환경오염이 심각해지기 훨씬 이전인 고려시대에 이미 생태주의적 의식에 눈떠 있었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에 놀라워한다. 하지만 이규보같은 사람이 흔한 것은 아니었다.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인 관계를 노래한 녹색시조는 대단히 드물었고, 자연에서 느끼는 행복감이나 충일감을 군주의 은덕으로 돌리는 시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지은이는 도법스님의 <지리산이 신음하고 있다>를 소개하면서 구부러진 길은 일직선으로 만들고, 높은 산과 언덕은 터널을 뚫고, 호수와 강을 막아 댐을 쌓고, 광물과 자원을 채취한다면서 땅을 마구 파헤치고, 경치가 조금이라도 좋으면 낮은 땅을 메우고 언덕이나 산을 깎아 호텔이나 콘도 같은 위락시설을 짓고, 한국지형에 잘 맞지도 않는 골프장을 짓고 또 짓는 현실을 개탄스러워한다. 자연을 훼손하고 환경을 파괴해온 주범인 인간이 자신의 잣대로 세상만물을 재단하고 자연의 순리를 계속 거스르다간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라 경고한다.

  살아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취하려는 잔인무도한 인간의 행태를 풍자한 박지원의 <호질>은 조지오웰의 정치풍자소설인 [동물농장]과 닮았다고 책은 말한다. 인간이 다른 생물을 학대하거나 필요이상으로 살해하는 것도 큰 문제지만 언어를 통해서도 생물을 업신여기거나 얕잡아 보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개’가 들어가는 온갖 욕이나 말끝마다 ‘개’를 넣어 표현하는 젊은층의 말습관은 생명경시와 생태계파괴의 또 다른 형태인 것이다. 지은이는 생김새를 보고 앉은뱅이꽃이라고 부르거나 오랑캐가 쳐들어오는 시기에 핀다고 오랑캐꽃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다. 그밖에도 다양한 문학작품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 문명과 인간의 오만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안기는 책은 잘 만들어진 문학/환경/철학 통합교과 같아서 청소년이 읽기에도 좋을 것 같다.

  100여년전 독일의 문화철학자 오스발트 슈펭글러가 예견한 [서구의 몰락]을 넘어 현재는 ‘지구의 몰락’이 염려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대자연에 영감을 받아 작품을 창작해낸 오에겐자부로나 J.R.R 톨킨처럼 유명한 작가를 꼽지 않더라도, 수많은 문학가들에게 지구의 자연은 창작의 원천이 되어왔다. 책은 지구와 환경, 인간중심주의와 생태주의, 신앙과 철학까지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 오가며 자연을 노래한 문학작품들에 관한 해설을 들려준다. 책을 소개하는 책이 넘쳐나고, 엇비슷한 내용이 반복되어 질려하던 차여서 별 기대 없이 책장을 넘겼는데 뜻밖에도 재밌고 알찼다. 풍부한 영양가에 맛까지 좋은 음식 같은 책이다. [녹색고전]은 책을 소개 한다기보다 자연친화적인 글을 통해 작품 속 화자의 시선과 태도를 깊이 들여다보고 곰곰이 생각해보도록 돕는 책이었다. 옛시조부터 현대수필까지 인상적인 대목을 발췌한 글을 차근차근 살피고 상세한 해석을 곁들이는 지은이의 능력은 탁월하다. 책은 문학, 생물, 철학, 환경의 여러 영역에 대한 지은이의 넓고 깊은 식견을 오밀조밀하게 풀어내 술술 읽힌다.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에 경어까지 더해져 마치 재미있는 강의를 들은 것 같다. 

비채, 녹색고전, 김욱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