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담은 글은 ‘진노랑색’ 옷을 입었다. 책을 읽기 전엔 참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칠선녀가 ‘멸망의 색깔’이라고 했다며 ‘노란색 옷은 절대 입지 말라’고 강력하게 주문한 [어머니의 믿음]편을 읽다가 웃음이 쿡쿡 나왔다. 그렇다고 웃긴 책은 아니다. 씁쓸한 웃음이 나긴 하지만 참으로 담담하고 차분하게 끝이 보이는 사랑, 불안과 슬픔과 절망 등의 갖가지 생각과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책은 아프고 무겁다.

  사진을 찍을 때면 ‘자동반사’로 웃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나를 드러내야할 때는 감추고 포장하고 꾸미기 바쁘다. 습관적으로 잘 보이고 싶은 심리의 자연스러운 반응이기도 하겠고,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일 수도 있다. 특히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사람이라면 ‘의도성’이 점점 짙어져 보기 좋은 관상용 식물마냥 방긋방긋 웃기만 한다. 착한 척 해야 하고, 유쾌한 척 해야 하고, 털털한 척까지 해야 한다. 새침하거나 뚱한 표정을 지었다는 이유로 ‘태도 논란’이라며 기사가 되는 현실에서, 좋고 싫음이나 정치적 사안에 대한 명확한 의견표명은 용기 있는 소수의 몫이다. 

  공연 시작 전에 언제나 ‘화 난거 아니에요.’라고 이야기하며 분위기를 풀지만, 보여 지는 것에 따라 평가받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불편하고 답답한 속내를 이석원은 [어느 보통의 존재]에서 풀어낸다. 나도 그런 적이 있다. 유전적으로 친가 쪽은 쌍꺼풀이 없다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진해진다. 삼촌도 그렇고, 아빠도 그렇고, 아빠를 닮은 나도 그렇다. 사춘기 즈음부터 눈꺼풀에 살짝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눈 덕분에 편안한 상태로 눈을 뜨고 있는데도 늘 ‘잤니? 졸립니? 졸았구나’라고 오해를 받았다. ‘잠만 자는 아이’로 평가 받는 게 지독히도 싫어서 친구들이나 선생님이 볼 때면 늘 눈에 힘을 바짝 주고 있었다. 지금생각하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학교에서 그렇게 에너지를 소모하고 살았다니 참 안타깝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하거나 좋아하는 책을 더 많이 읽고 사색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로서 목소리의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지은이와 이소라에 대한 이야기는 눈물겹도록 감동적이다. 두 사람은 자신 안으로 파고들어 갈고 닦으며 ‘예리함’을 유지하는 부류의 예술가이다. 그 예리함을 유지하는 모습은 대중들에게 까탈스러운 모습으로 오해를 살수도 있지만, 나처럼 그들을 이해하고 열렬히 좋아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책중독자의 습관대로 눈길이 가는 책을 마구 사서 쌓아두고 묵히다가 뒤늦게 읽고 ‘왜 더 빨리 읽지 않았을까’ 후회하곤 하는데, [보통의 존재]가 바로 그랬다. 마음에 꼭 드는 친구를 만난 것처럼 지은이의 까칠하고 예민하고 섬세한 성격과 생각을 담은 글이, 시 같은 문장이 자꾸자꾸 좋아졌다. 서로를 갉아먹었던 결혼생활에 대하여, 사랑의 끝에 대하여, 추레한 사생활에 대하여, 불행한 어린시절과 불편한 가족에 대하여,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우정의 한계에 대하여, 엄마가 말을 걸면 화부터 나는 것과 악다구니처럼 싸우면서도 손을 잡고 주무시는 부모님의 이상함에 대하여, 온갖 모순과 부조리를 안고 있는 세상과 자신에 대하여 이토록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니. 감정과 생각의 소용돌이를 평온하게 표현하는 이석원의 글은 매력적이다. 한마디 한마디가 내 안의 음울함에 정곡을 찌른다.

“행복중의 으뜸이 바로 평범한 행복이다.

왜냐하면 삶이, 세상이 우리를 가만 놔두질 않는다.

일상에서 무사히 하루를 보내는 것 만한 행복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날, 당신의 인생은 안타깝다.”

보통의존재, 달, 이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