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를 생각하면 ‘유리로 된 빌딩’이 떠오른다. 언뜻 보기엔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처럼 와르르 무너질 듯 위태롭게 보인다. 유리 안쪽은 온갖 편법과 부정의 때가 두텁게 쌓여 밖이 보이지 않는다. 정권이 아무리 ‘행복’과 ‘창조’를 세뇌시키듯 외쳐대도, 불평등과 패배감에 지친 국민은 불행하다. 식민지, 전쟁, 독재시대를 거치면서 ‘이익을 좇는 무리’들은 갈수록 득세하며 우리사회를 병들게 만들었다. 책은 공범들로 가득한 우리사회의 어두운 면면을 낱낱이 보여준다.  

  대담집은 서로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여느 책보다 잘 읽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공범들의 도시]는 한국사회가 직면한 참담한 현실을 빼곡히 담고 있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듯 더디게만 읽혔다. 막연하게 짐작만 하고 있던 사실을 지은이들의 대화를 통해 정확하고 자세하게 들으니 내가 사는 세상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 몹시 답답하고 한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깜깜한 길을 더듬더듬 걷는 듯 두렵고 아득한 기분이었다.

  경찰이 폐지를 가득담은 수레를 끌고 가는 할머니를 돕거나 휠체어를 탄 시민에게 우산을 씌워 주었다는 훈훈한 소식이 가끔씩 들려온다. 참 기분 좋은 뉴스지만, 한편으로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시민의 안전을 도모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경찰에게 칭찬이 쏟아지고 감동한다. 그런 사례가 일상이 아닌 ‘화제 거리’가 되는 현실이 씁쓸하다. 경찰을 생각하면 편안함, 든든함이 아니라 불편함과 불안감이 떠오른다. 한겨울에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쏘고 대선 직전 선거에 영향을 미치도록 무리하게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쌍용자동차 노동자를 잔인하게 때리는 경찰, 일산영달을 위해 거짓발언으로 사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청문회에서 선서를 거부하는 비겁하고 뻔뻔한 경찰청장들이 존재하는 한, 그들에게 느끼는 불편과 불안은 어쩌면 당연하다. 책에서 지은이들은 우리가 경찰과 사법제도에 대해 느끼는 불안과 불신의 원인과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경찰은 최근 수갑, 경찰봉, 포승줄 등의 장비사용 보고서 작성 의무화를 폐기했다. 인권을 보호하기는커녕 공권력의 남용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영국경찰은 무장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표창원은 말한다. 강력범죄의 증가로 죽는 경찰이 늘어나도 여전히 무장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해서 시민이 불안과 공포를 느끼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무장을 더 강화하겠다는 우리 경찰과 극명히 대비된다. 또 영국은 사용하는 여러 장비도 경찰들이 일일이 체험해보고 안전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도입한다고 한다. 이와 달리 우리 경찰은 2009년에 쌍용자동차 시위를 진압하면서 발암물질이 포함된 최루액을 한해 사용량의 95.5%인 2000L이상을 사용했다. 범죄예방을 위해해 CCTV를 도입할 때도 영국의 경찰청장들은 사생활 침해, 인권 침해 요소도 있으니 무분별한 확산을 반대하고 신중하게 도입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우리는 어떤가. 학력은 높을지언정 수준은 한참 떨어지는 우리의 경찰청장들은 권력에서 원하는 대로 이리저리 춤추고 널뛰기 바쁘다. 순경부터 차근차근 올라가서 온갖 문제와 첨예한 상황들에 부딪히고 철학적 갈등을 겪으면서 성숙해진다. 그렇게 발전한 사람이 경찰청장이 되는, 안정된 경찰제도가 시민을 위한 결정을 할 수 있는 멋진 경찰을 만들어낸다고 책은 말한다. 규정된 절차와 방법 없이 개인에게 의존하는 우리와 달리, 영국경찰은 제도가 모든 것을 해결하고 개인은 그 안에서 자기 역할을 하는 전문가로 키워진다는 것이다. 우리처럼 상명하복의 수직적 관계가 아닌, 각기 고유한 전문영역을 갖는 동등한 관계 속에서 국민의 신뢰를 받으며 안정적으로 경찰제도가 운영된다니 부러울 따름이다.

  책은 그밖에도 범죄현상과 수사기법, 여전히 식민 상태인 법학과 법제도, 그 속에서 오염되고 왜곡된 상태로 길러진 법조인, 검찰조직의 문제, 당사자주의와 공소장일본주의, 검시에 대한 독립성확보 필요, 공소시효,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국가보안법 등 우리사회의 아프고 슬프고 부끄러운 현안들을 조목조목 짚어낸다. 표창원 하면 떠오르고, 그의 옆에 꼭 따라다니는 단어 ‘정의’에 대한 외침 또한 책 속 가득하다.

“눈 앞의 이익에 집착해서 올바름을 버리지 마라. 잘못했으면서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인정한 순간 내가 손해를 볼 까봐 우기고 남의 가슴에 멍들게 하지마라. 그게 정의다.”

  민주주의 사회가 어떤 것이고 우리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 그 사회 속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책은 끊임없이 묻는다. 엄혹한 시절에 홀로 꿋꿋이 ‘정의’를 외치는 표창원이 있어 든든했지만, 위험천만한 외줄에서 떨어질 것 같아서 염려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기우였다. ‘이익보다 정의를 좇겠다.’는 표창원의 신념은 견고하고 강력해 보인다. 자신의 신념을 여러 형태와 방법으로 보여주겠다는 그의 단단한 각오는 믿음직스럽다. 그의 마지막 말처럼 공범이 되지 않기 위해, 공범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용기 있는 소수와 정직한 다수’가 협력하고 연대하며 다시 시작할 때다. 

 

공범들의도시, 표창원, 지승호, 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