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전형적이면서 전형적이지 않다. 불필요한 수사(修辭)를 배제하고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서술하는 하드보일드 방식을 철저히 따랐고, 이 장르의 거장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가 떠오르는 주인공을 내세웠다. 탐정 사와자키는 날렵하지만 약간 굽은 등을 하고 터벅터벅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는, 지친 중년남자가 연상된다. 표지 날개에 담배를 손에 들고 있는 하라 료처럼. 흔히 트릭과 반전에 양념처럼 곁들여지는 멋있고 유능하게 그려지는 주인공, 예측 가능한 전개와 추리 수순, 매력적인 여성과 빠지는 사랑 같은 진부한 추리 소설의 방식이 늘 불만이었다. 반면 불만에 해당하는 구석이 하나도 없던 [안녕, 긴 잠이여]는 탄력성이 강한 공처럼 도통 어디로 튈지 몰라서 끝까지 흥미진진했고 신선했다.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 곁을 동행하는 느낌이었다. 대단히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은 작가가 직접 일일이 다녀보지 않고는 쓸 수 없을 것처럼 짐작된다. 사와자키는 낡은 블루버드를 타고 시내를 돌고, 여러 등장인물들에게 탐문을 하고, 사건이 일어난 건물을 독자와 함께 올려다볼 뿐 추리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사건을 수사하지만 추리를 해내가는 주인공의 머릿속을 보여주지 않는 작가의 서술방식 덕분에, 1인칭 시점임에도 주인공의 ‘나’는 ‘그’로 느껴진다. 그래서 독자가 보지 못한 진실을 치고나가는 사와자키는 늘 한발 앞선다.

  바바리코트와 담배, 시니컬한 성격의 필립 말로처럼 사와자키 역시 대단히 매력적이다. 괴한들에게 두들겨 맞아 정신을 잃고 자신을 감시하던 범죄조직의 도움으로 위태로운 상황을 벗어났어도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몸조심 하라고 허세를 부리고, 와타나베를 쫓는 경찰간부의 집요한 협박에도 굴하지 않는다.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는 적정거리를 누구에게나 유지함으로서 상대에게 다소 냉정하게 비춰지지만 그만의 방식으로 따스함을 표현한다. 특히 끊임없이 담배를 피워대는 사와자키의 모습은 아주 오래전 등나무 아래서 비스듬히 담배를 물고 기타를 치던 모습에 반했던 남자가 떠오를 만큼 멋지게 느껴진다. 물론 현실에서는 담배를 멋지게 피는 남자도 드물고, 불쾌감만 주는 경우가 더 많지만 말이다. 

  와타나베 탐정사무소의 탐정 사와자키는 십 일년 전에 죽은 누나의 자살을 의심하는 우오즈미 아키라의 의뢰를 받는다. 당시의 사건조서를 읽고 관련 인물을 만나 되짚어보는 과정에서 허점이 드러나고, 수사를 방해하는 세력이 등장하면서 사건은 예측할 수 없는 전개를 보인다. 또 수년전 거액과 마약을 들고 사라진 와타나베를 찾는 경찰과 범죄조직이 사와자키를 괴롭히는 다른 갈래의 이야기가 얽혀있다. 치밀하게 구성된 장치와 스토리가 잘 어우러져 괴이함으로 가득했던 사건의 크고 작은 의문은 착착 풀려나간다. 도입부의 궁금증에 대한 답을 포함한 짧은 소설 형식의 후기는 사와자키와의 다음번 만남을 기대하게 한다. 깊은 내공을 보여주는 하라 료는 늦깍이 작가로 데뷔한 것까지 그가 그토록 경애하는 레이먼트 챈들러와 닮아있다.

  나는 항상 추리소설을 가장 좋아한다고 주장하지만 ‘과연 그럴까’라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낯선 작가의 훌륭한 작품을 만났을 때 특히 그렇다. ‘진정 좋아한다면 이렇게 모를 수는 없어. 왜 이제야 만났나’라며 매번 자책한다. 이전에 나온 저작을 어서 찾아 읽어보고 싶을 만큼 [안녕, 긴 잠이여]를 쓴 하라 료는 매력적이다. 처음 책장을 펼칠 때만 해도 ‘언제 이 두꺼운 책을 다 읽나’ 싶었는데, 서서히 가속도가 붙어 중반 이후에는 단숨에 읽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5년여의 공을 들인 작품을 순식간에 읽어버리다니, 작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책은 엄청난 흡입력으로 독자를 빨아들이는, 정체를 숨긴 괴물 같다. 책의 가치를 ‘후두두’ 날려버릴 듯한 몇 군데의 오타는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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