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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애플!

또 다시 잡스와 애플에 관한 책이 나왔다. 지겨울 때도 되었는데 또 나왔다. 뭐 잡스 없다고 소비자들이 애플을 떠난 건 아니니 이해는 간다. 즉, 돈이 되니까. 그런데 저자 입장에서 책을 쓰는 일은 쉽지 않은 법, 이 책은 수많은 애플 관련 도서들 사이에서 어떠한 생존전략을 갖고 있을까? 즉 무얼 믿고 시간을 들여 차고 넘치는 소재에 대한 책을 썼느냐 이 말이다.

물론 변별점이 있었다.

찬찬히 살펴본 결과 이 책은 그전의 책들과는 다른 부분에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저자가 발명해낸 질문은 이러한 것이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열광할까?’(4)

그러니까 이 책은 스티브 잡스의 경영, 제품, 사업의 철학을 검토하여 애플의 척추를 그려낸다. 즉, 이미 출간된 다른 잡스 관련 책처럼 그의 인생 이야기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IT 업계의 지도를 새로 그려낸 잡스와 애플의 현재와 미래’와 ‘잡스가 무슨 생각을 했고 현재 구축된 애플 생태계를 어떻게 발전시켜왔으며, 애플은 앞으로 어떤 제품과 서비스로 애플랜드를 완성시킬지, 또 컴퓨터 회사였던 애플이 왜 스마트폰을 만들었으며, 애플TV까지 사업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지’따위에 관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애플신앙

오늘날의 ‘진보’란 무엇일까? 저기 여의도에 앉아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진보일까? 시민들은 이에 동의할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더더욱 이 시간에는. 물론 그들을 응원하는 열렬한 시민들이 있다는 사실쯤은 안다. 다만 동시대의 소비자 다수에게 각인된 진보의 상징은 그것들이 아니다. 진보의 지각변동, 역설적이게도 오늘의 진보는 통합진보당이 아닌 애플과 스티브 잡스다. 자본의 횡포를 제어하고자 하는 기존 진보와는 달리 오늘의 진보는 자본의 정점에 자리하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잡스의 마케팅 실력도 한 몫 했다지만, 애플의 ‘진보적 이미지’를 구성하는 한 축은 소비자들인데, 소비자들의 애플 신앙은 실로 공고하다. IT 분야 시장조사 회사인 파이퍼 재프리가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 지역 21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아이폰 이용자의 94퍼센트가 다음 스마트폰으로 다시 아이폰을 이용하고 싶다는 응답을 했다고 한다. 이런 수치는 열광이라는 표현을 넘어서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너도나도 아이폰, 아이패드. 소비자들은 애플의 제품들을 통해 새로운 세상과 만난다.

잡스 없는 애플

그런데 애플은 2011년 10월 5일 이후 끊임없는 위기설에 시달려야 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잡스 없는 애플이란 상상하기 싫은 그 무엇이었지만 너무도 빨리, 미처 상상해보기도 전에 이것이 현실화 되어버렸다. 애플 신앙자들은 그야말로 멘붕….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소비자들은 잡스가 잡스 없는 애플의 기틀을 마련하고서 떠났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안심하게 된다. 잡스가 없어도 애플의 뛰어남은 그대로였던 것이다. 잡스는 떠났지만 그의 철학과 흔적은 여전히 애플의 핵심이다. 더군다나 새로운 도약까지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은 소비자들을 즐겁게 만든다. 올 12월에 선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애플 iTV, 그리고 2011년 6월 6일, 애플의 세계 개발자 회의에서 잡스가 직접 발표한 아이클라우드(2011년 10월 12일 출시), 특히 클라우드 세상으로의 진입은 라이벌임을 자임하지만 잡스에게 ‘따라쟁이’라고 조롱받던 삼성에게는 심각한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클라우드 세상에 진입하면 더 이상 애플에게는 삼성에게 제공받던 고용량 메모리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남아 있던 삼성과 애플의 조력자 관계를 파괴하고 절대적인 경쟁자로 돌아서게 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애플은 삼성에게 특허 침해 소송을 걸었다.

삼성 vs 애플

재밌는 사실을 알려주겠다(뭐 이미 알 수도 있고). 사실 이 책의 저자는 삼성맨이다. 삼성전자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 말이다. 나는 이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아, 이 책은 애플에 대한 삼성의 선전포고구나!’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뛰어난’ 삼성맨으로서 다양한 스펙을 지니고 있다. 잠시 저자의 스펙을 살펴보자.

사내에서 핵심 인재라 불리는 사람들을 5년간 분석하여 2010년에 직장인들에게 멘토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창조멘토>를 출간하였다. 이 책은 대만에서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2005년에는 삼성전자 내에서 혁신 명인상을 수상하였고, 2006년에는 한국능률협회가 인정하는 혁신 리더로 선정되어 활동 사례가 소개되었다. 그리고 2010년에는 FE LEADER로 선발되어 1년간의 집중 육성 과정을 거쳐 현재는 설비 소프트웨어를 혁신하는 활동으로 회사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약력의 저자가 애플과 스티브 잡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지는 2년, 원고 작업은 9개월을 하여 지금의 <아이클라우드, 그 다음의 충격>이 탄생하였다 하는데, 연구 기간이 긴 만큼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는 치밀한 분석이 돋보인다.

그런데 왜 삼성맨은 애플에 대해 책을 내게 된 것일까? 의도가 뭘까?

의도했건 안했건 저자는 수많은 삼성맨을 대변하여, 애플에 꿀리지 않을 만큼 많은 삼성의 소비자들을 대변하여, ‘판타지의 차원에 머물러 소비자를 꾀려하는’ 애플을 아무런 거품 없는 현실의 나락으로 끌어내리려는 시도를 한다. 비난, 헐뜯기가 아니라, 신비주의에 대한 폭로의 전략으로 말이다. 원래 소비상품은 신비하고 감성적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어야 소비자를 유혹할 수 있는 법인데, 이 책의 논리정연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논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기존의 아이폰의 이미지는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애플의 소비자보다는 경쟁자들이 봐야할 책이다. 물론 저자는 연구의 기본인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삼성맨이 아닌 것처럼 글을 전개하는데 그 사이에는 본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부분도 있었으니

“아직까지는 우리에게 애플을 이길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다. … 애플이 비록 강하고 반론의 여지가 없는 IT 선두 기업인 것은 분명하지만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산은 아니다.”

심지어 소비자여, 삼성을 지지해달라고 저 닳고 닳은 프레임을 훔쳐와 호소하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우리 기업들이 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11)

다시 한 번: “애플이 던질 충격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다!”

근데, 소비자들은 그 충격, 애플이 선사하는 새로움에 대한 충격을 욕망한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충격의 완충장치 역할을 자처하니 결국 애플 판타지를 갖고 있은, 그러고 싶은 분들에게는 비추라 하겠다.

이 대결의 치열함과는 별개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에게는 삼성이냐 애플이냐, 이 양자택일의 숙명을 피해갈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세계화의 시대에서 패권을 쥐기 위해, 자본의 정점에 올라서기 위해, 최고가 되기 위해 ‘위로 향하는 열정’을 발휘하는 것에는 전문가다. 그러나 아래를 보살피는 열정, 가령 자사의 생산직 노동자들을 생각하지 않기로는 양측 모두 진배없다. 미국과 중국 노동자들의 막대한 희생과 함께하는 애플,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최소한의 위로도 할 줄 모르는, 어쩌면 이런 일에는 너무도 서툰 삼성. 이것이 이 두 ‘정점’의 이면이며 따라서 1등 기업은 없다. 철저한 자본 논리에 따라 흘러가는 두 기업에게는 무리한 요구일지 모르겠으나 더 이상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 ‘진보’는 없기를 바란다. 우리 소비자들이 새로운 진보적 요구를 할 지점은 바로 여기다.

S사 윗분들은 형제끼리 친하게 좀 지내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