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여행을 다녀오면 다시 반복되는 일상 속에 달콤했던 며칠간의 기억은 씻은 듯 사라지는 게 대부분이다. 목적없이 그저 경치를 즐기고 스트레스를 풀려는 여행은 지나고 보면 남는 것도 여운도 별로 없다. 하지만 한 곳을 둘러보더라도 그 곳의 전설이나 문화재의 역사를 이해하고 자연의 장엄함과 옛 조상들의 순례지를 곳곳을 다시 되밟아본다는 의미에서 이 책은 사치스러운 해외여행을 즐길 수도 있는 현대인들의 여행 풍조에서 또다른 여행문화를 제공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자연경관이 곧 장관이 되는 성스러운 호수와 구약의 창세기에 등장하는 터키의 아라랏산은 그 신비를 꼭꼭 감추고 있는듯  하다. 높디 높은 위용을 자랑하는 중국의 타이산은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하고 인도의 갠지스강에서는 몸을 정결하게 하려는 순례자들로 넘쳐난다. 미스테리한 거석의 유적들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다. 칠레의 이스터섬에는 사람의 형상을 한 '모아이'가 288개나 제각각의 크기를 한 채 오랜 세월을 지키고 있고 페루의 마추픽추는 수수께끼만 남긴 채 폐허가 되 있다.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과 스코틀랜드의 칼라나이스 거석, 잉글랜드의 스톤헨지는 대표적인 암석 유적인데 지금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라고 한다. 한편 각 종교의 성자를 기리는 성전도 소개되어 있는데 공자를 기리는 중국의 취푸, 기독교 최고 성지 중 하나라고 하는 베들레헴의 예수탄생교회가 그것이다. 성전들은 대부분 화려하고 다양한 색채의 문양과 조각을 이용해 건축한 것이 동서양 모두의 특징인데 서양건축에서는 둥근 돔 모양과 미나레트라고 하는 뾰족한 첨탑형식의 기둥 갯수로  해당 성전의 서열(?)등을 나타낸 듯 하다.

 

또한 비록 세월이 흘러, 혹은 외부의 공격등으로 훼손되었으나 그 기품만은 여전한 몇몇 유적도 지구상엔 건재하다. 힌두교와 불교도의 공동 순례지인 앙코르와트를 비롯해 고대 성애의 기술을 총망라한 '카마수트라' 속 온갖 체위를 관능적이게 조각해놓은 인도의 카주라호 힌두교 사원군은 매혹적이기 그지없다. 각 나라의 전통과 종교의 특색을 엿볼 수 있는 일상 속의 예배당도 빼놓을 수 없는 성지여행 코스다. 유대인들의 집회당인 수많은 시너고그와 이슬람교 사원인 모스크는 각 세기 건축 양식을 반영하듯 섬세하게 지어졌고 그 중에는 6만명까지 수용 가능한 파키스탄의 바드샤히 모스크가 인상적이다. 뮤지컬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자국에서 관광객이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하며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인 바티칸시국내에 있는 산 베드로 성당은 가톨릭교 최고의 성지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의 두오모 성당은 내로라 하는 당대 건축가들에 의해 제작되어 피렌체의 하늘을 지배하고 있으며 피렌체 어디서든 붉은 돔이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오래전 얘기로만 들었던 리투아니아의 십자가언덕이 종교탄압의 상징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종교적인 의미의 순례자가 유독 많은 서양은 그 행사도 축제도 의미와 기념을 달리 하여 종교별로 특색있는 자기들만의 고행길, 혹은 축제를 거행한다. 멕시코의 '그리스도상을 향해 가는 순례행렬'은 기나긴 행렬에 고행과 축제의 의미가 모두 담겨 있는 것 같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절대 다수 종교인 이슬람교의 최대 행사 '하지'는 말 그대로 이슬람인이라면 일생에 한번이라면 참여해야 하는 의무이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이스라엘의 '통곡의 벽'은 유대인들의 애통함이 느껴지는 듯해 짠하기도 했다. 유럽 최대 순례여정 중 정점을 찍는 곳 산티아고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여행지로 손꼽는 곳 중 하나이다. 또한 '죽은 자의 날'이라고 하는 공포와는 전혀 거리가 먼 멕시코 전통 축제는 그 지방 특유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는 연등축제도 나와 있었는데 알고 있으면서도 새삼 그 의미를 알고 내용을 함께 읽으니 새로웠다. 유럽 각국에서 열리는 부활절과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행사등은 연중 최대규모 행사 중 하나로 많은 인원이 모여 한껏 예수의 탄생과 부활을 축하한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이의 무덤이 있는 곳과 비참한 전쟁으로 수많은 인명이 스러져감에 안타까움을 기념비로나마 애도하는 추모장소는 여행의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상념에 젖게 한다.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목숨을 잃은 5만 8천여명의 고결한 이름이 새겨진 기념물과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던 히로시마의 평화기념공원은 전쟁의 상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후세인들의 산물인 것이다. 완벽한 대칭의 미를 이루는 인도의 타지마할과 유대인 희생자들의 혼을 기리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그 자체로 경외감과 엄숙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그리고 세계무역센터가 주저앉은 자리에는 '그라운드 제로'라고 하는 다시금 성스러운 건축물이 들어서고 있다.

 

여행을 할 때의 적절한 시기, 계절과 숙박과 일정등을 소개하고 주변 명소를 놓치지 않고 둘러보길 바라는 저자의 세심한 배려도 곳곳에 묻어있다. 관련 웹사이트와 선명한 화질의 사진은 당장이라도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충동이 들 정도로 생생하다. 시간과 일정에 쫓겨 부랴부랴 가이드를 끼고 떠나는 여행보다는 마음을 정제하고 영혼을 다스리는 의미에서 성지여행은 여행 그 이상의 것으로 다가올 것이다. 언젠가 기회가 되어 세계의 순례지를 찾아 밟아 본다면 이 여행서는 소중한 길잡이가 되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