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법칙과 수학 이론, 복잡한 공식이 맞물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한 분야. 일반인들이라면 보통 학창 시절 이후로는 과학과는 담을 쌓고 지내는 게 지극히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 이 골치 아픈 과학을 재밌고 쉽게 풀어낸 기자가 있다. 이름하여 '과학커뮤니케이터'. 그가 집필한 본 저서를 보면 과학이 그리 딱딱하고 진지한 것만은 아닌, 생활 속에서나 흔히 먹는 음식 속에서도 흥미로운 과학의 형태를 관찰할 수 있다고 말한다.

 

 헌데 49편로 이루어진 이 과학 에세이는  상식을 뒤엎는 자료가 꽤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퀴리부인이 알고 보니 큰 업적에 가려 불륜행각을 벌였다는 사실을 시작으로, 씨없는 수박으로 잘 알려진 '근대 농업의 아버지' 우장춘 박사는 놀랍게도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가담한 우범선의 아들이란 충격적 사실은 나를 2연타로 멍하게 만들었다. 또 온갖 바이러스의 퍼짐 현상은 '확장된 표현형'이라는 것의 일환으로 여자들이 화장을 하는 행동처럼 개체의 행동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것에 있어서 일맥 상통하는 거라고 하니 정말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흥미로웠다.

 글을 읽으면서 옛날 사람들은 적어도 지금보다 학문에 몰두하는 집중력과 열정이 엄청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일례로 인도의 라마누잔은 기존 수학자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의 어려운 논문을 독학을 통해 써내고 말년엔 결핵으로 죽어가면서도 수학만은 놓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영화를 통한 과학의 접근도 흥미롭긴 마찬가지다. <인셉션>에서 나온 끝없이 이어지는 펜로즈 계단을 재현해보는 컷은 그리 만만치 않은 작업이란 걸 알 수 있다. 또, 인류의 영원한 욕구 젊음을 그린 <인타임>을 예로 들어 노화의 지표 텔로미어(telomere)를 설명한다. 즉 스트레스는 노화의 직, 간접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결론이다.

 

2010년 노벨물리학상의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아쉽게 수상하지 못한 우리나라의 김필립 교수가 책 속에 소개되어 있었는데 그는 쿨하게도 "연구는 즐기며 하는 것이며 노벨상을 타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란 말로 일축했다고 한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예전에도 이런 비슷한 사례가 있다. 바로 독일의 오토 한과 리제 마이트너인데 함께 연구를 했던 이들은 어찌 보면 오토 한의 욕심 때문에 마이트너의 공이 역사 속으로 묻힌 것 같아 아쉬웠다. 누가 요즘 광고 카피를 곧이 곧대로 다 믿겠냐마는, 카제인나트륨이 안들어간 신제품이라며 김태희를 앞세워 광고하는 커피. 알고 보면 기존 믹스와 오십보 백보란다. 버터가 몸에 안 좋으니 마가린을 먹으라는 옛 말처럼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 아닐까.

한편, 포유류도 아닌 새에게도 보는 눈이 있는지 맘에 안드는 파트너와 짝짓기를 강제하거나 선택됐을때는 그 스트레스가 엄청나다는 사실, 인간의 정액 냄새를 닮은(?) 밤꽃 향기 이야기는 그 중 압권이었다. 그리고 수렵채취 활동 등으로 인해 정착된 일부일처제로 커진 부성애는 유인원 중 인류가 유일하다는 사실 또한 흥미로웠다.

 

진화에 관한 재밌는 이야기도 이어진다. 인간의 뇌가 커진 이유를 '비싼 조직 가설'과 '직립보행 가설'로 뒷받침해 설명한 부분도 지나칠 수 없는 읽을거리다. 암과 당뇨에서 영원히 해방된 '키 작은 사람들'. 아일랜드를 강타한 '감자 마름병'은 유전자 분야를 어렵게만 생각한 내가 좀 더 쉽게 사례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던 이야기였다.

이 책은 음식에 대한 맛있는 과학 이야기로 에세이를 마무리한다. 제작년 <제빵왕 김탁구>에 나와 화제가 됐던 봉빵의 인기를 얘기하며 이스트의 실체와 탄생에 대한 비화를 들려준다. 잘 익은 바나나가 어둠속에서 파란빛을 내는 신기한 현상의 비밀과 우리가 흔히 패스트푸드점에서 먹는 프렌치프라이가 유독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를 파헤지는 과정을 읽으며 어느 새 내게 과학은 지루하고 어려운 분야가 아닌 일상과 피부로 와닿는 쉽고 재밌는 즐길 거리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