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내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그의 앞에 붙는 수식어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단 하루동안의 왜적과의 전투를 그린 황산대첩은 이성계가 변방의 나이 많은 지방무사 시절 가별치들을 이끌고 정도전과의 지략을 앞세워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자 고군분투하는 내용이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있다. 고려는 왜적의 침입을 한낯 왜구의 날뜀으로 과소평가하고 제대로 된 군사도 내어주지 않고 전라토벌장인 성계에게 1만 대군의 왜적을 상대하라 명한다. 그러나 체계적인 군사체제를 갖춘 남조는 더이상 '왜구'가 아니다. 고려를 삼키고 이 땅을 정벌하려는 '왜적'인 것이었다. 성계는 권문세력인 무사 변안열과 정몽주의 비웃음을 사면서도 자신의 꿋꿋한 지략을 밀어붙이고 나간다.

지면 죽음으로 책임을 져야 하고 이기면 그만인 싸움. 고려가 이기는 법은 진정 계략의 우위에 있었다.

 

한편, 왜적 쪽의 수장 아지발도는 스승 슈겐부츠의 지령에 따라 기꺼이 남조의 무기가 되길 자처하고 조국을 위해 천황을 위해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이 전선에 뛰어든 터였다. 그 역시 이 전쟁은 이겨야만 하는 전쟁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넘어온 현해탄을 다시 건너갈 수도, 돌아갈 곳도 없다. 그는 모든 의지를 치도 끝에 품고 달려들었다. 간인이라고 하는 스파이가 양쪽 진영에 잠입하여 적내의 정보를 캐내어 거짓정보를 흘리는 장면과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사간을 자처한 미즈류라는 자가 인상깊었다.

중갑주에 요로이까지 무장한 왜적과 낡은 쇄자갑에 불과한 성계부대. 게다가 적과의 수효 차이는 몇배가 나니 이미 승부는 정해진 것이라고, 중앙군 수장인 자신에게 지휘권을 넘기라며 변안열은 재촉하고 기어이 내분은 일어나고야 만다. 그리고 여진족의 무사 우르하타가 배신하는 지경까지 이르는데..

 

가별치 부대가 최후로 선택한 방법은 활과 창을 배제한 도끼공격. 두꺼운 적의 갑주를 뚫기 위해서는 근접공격이 승부를 좌우할 터였다. 이미 수많은 고려의 전사가 전사(戰死)한 상황에서 최후의 불화시 공격신호인 풍등을 하늘 높이 불붙여 올려 어둔 밤 하늘을 수놓았다. 황산자락은 불에 타오르고 한낮에 시작한 전쟁은 아지발도의 죽음을 끝으로 또다른 전설을 만들어 내려 하고 있었다. 그의 나이 46세 되던 해의 일이었다.

 

역사소설이 이리 술술 잘 읽힐수 있을까. 한 구절 한 구절 살과 창이 날아가는 장면이 연상되고 공민왕 재위 시절 어지럽던 나라 정권이 눈에 훤했다. 거친 사나이들의 전투가 절정에 다다르고 불화살이 날아갈 때, 풍등이 날아오르는 장면은 정말 신귀백 추천 작가의 말처럼 압권이었다. 흡사, 사극의 한 장면처럼 또렷하게 내 뇌리에 스쳐지나가는 것이었다. 말을 타고 변방을 달리는 자유를 누리는 걸 즐겼던 이성계. 그의 영혼은 왕좌안에 갇혀 있기엔 너무 자유로웠던 것이다. 문인이 아닌 무인으로서의 그의 삶을 재조명한 이 소설은 너무나도 흥미롭다. 남자들의 의리와 투합, 그리고 이성계의 리더십등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고려의 역사를 잘 모르는 내가 한자가 섞인 어려운 단어와 지명을 뜻하는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독자를 배려한 약간의 각주와 대화에 등장한 시조에 대한 설명쯤은 부연설명이 되어있었으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