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그림책, 전에는 애들이나 보는 줄 알았다. 어른이라면 기본 3백 쪽은 넘는 소설을 읽어야지, 그림책이 다 무어야? 했었다. 그런데 아빠가 된 후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 보니 그림이 곁들여진 한 편의 시, 분명하고 강한 메시지를 지닌 아름다운 시가 바로 그림책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전에는 그림책 일러스트의 완성도나 표현 기법에 주목했다면, 이제는 세상을 향한 그림책의 메시지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림책의 깊이와 넓이에 대해 놀란 사람, 비단 나뿐이 아니었다. 수많은 ‘어른 독자’들을 감동과 웃음, 눈물과 위로로 인도하는 한국문학의 대들보 격인 큰 작가들, 젊은 문학을 대표하는 뜨거운 피의 소설가들 역시 그림책의 세계에 경탄하고 공감한 이가 적지 않았다. 한국 문단의 ‘얼굴’이라 일컬을 수 있는 작가들이 그림책에 어떤 찬사를 보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언젠가 너도』
“읽는 데 일 분이면 충분합니다. 일 분 후 마음이 쩡하니 갈라지는 듯한 여운과 만날 겁니다. 그 여운이 몇 주일이 흐른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토록 짧은 글이 생을 확 뚫고 지나갑니다. 곁에 두고 싶었으나 그림과 글을 찬찬히 다시 본 뒤 그날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던 어린 딸을 가진 엄마에게 건넸습니다. 그 엄마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일 분 후에 가만히 책을 가슴에 갖다 대더군요. 어린이 책인데 나에게는 엄마를 위한 글로, 모든 아름다운 작별을 위한 글로 읽혔습니다.” _ 소설가 신경숙

창비에서 펴낸 <엄마를 부탁해> 한 권으로 백만 명의 독자를 전화기 앞으로,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리게 만든, 조용하고 나긋하나 강한 힘을 지닌 소설가 신경숙. <외딴 방> <리진> 등의 대표작으로 열렬한 지지를 받는 국민 소설가가 사랑한 그림책, <언젠가 너도>. 그녀의 작품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눈시울을 붉혔다면, 이 책 <언젠가 너도>를 읽게 되었을 때 감회가 남다르리라 본다. 나 역시 업무 관계로 수원에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엄마를 부탁해>를 읽다 주책맞게 눈물을 흘렸는데, 남이 볼새라 기차가 어두운 터널을 짧고 빠르게 지나는 순간 눈물 콧물을 훔치던 기억이 난다. 모든 자식은 부모, 특히 엄마에 대한 원죄를 지니고 태어나는데, <언젠가 너도>는 세상 모든 딸에게 바치는 엄마의 사랑 노래이자, 딸이 엄마에게 선물하는 감사의 메시지이다. 아직 미혼이고, 아이가 없다 하더라도, 세상 모든 딸과 모든 자식들은 <언젠가 너도>를 읽으며 잠시 숨이 멎는듯한 감동과 여운을 느낄 수 있으리라 본다.

『그림책 연어』
“연어를 관찰하기 위해 강물 속으로 들어가도 좋지만 강을 거슬러 오르는 힘찬 연어를 거울처럼 비춰 주는 이 그림책을 보아도 좋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여러분도 연어와 같이 폭포를 뛰어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냈으면 좋겠습니다.” _ 시인 안도현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힘찬 연어를 통해 ’두 발로 걷는 동물’인 인간들에게 감동과 교훈을 선사한 시인 안도현의 <연어>. 물 밖의 사람이 보기에 연어는 먹이 피라미드에서 두터운 밑받침을 이루는 ’생선’이자 생김이 모두 같은 ’물고기’ 일 뿐이지만,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귀소본능, 생명마저도 걸 수 있는 의지의 몸짓은 피라미드의 정점에 서 있다 자부하는 인간들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운명에 몸을 맡기기 보다는 참된 ’나’를 찾기 위해 쉬운 길이 아닌 어렵고 아픈 뜀박질을 선택하는 연어를 보면, 깨달음을 위해 진리에 몸을 던지는 수도자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적당히 때묻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이름으로 찾아온 시인 안도현의 시 같은 이야기, 연어. 그림책으로 새롭게 탄생한 <그림책 연어>는 <연어>라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어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까지 만나고 누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책의 꼴은 그림책이나 그 안에 담긴 메시지와 서정적인 그림 덕분에 오히려 어른들이 <그림책 연어>를 더 사랑한다는 점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탓하는 보아뱀을 모자로 착각하는 어른이라면, <그림책 연어>를 손에 들었을 때 동심과 함께 거센 폭포수같은 운명마저도 거스르는 자신의 꿈과 다시금 조우할 수 있을 것이다.

『나란히, 물고기, 고양이』
“여기 한 마리의 고양이와 한 마리의 물고기가 있습니다. 그들은 각자 다른 곳에서 왔지만 한눈에 서로 좋아하게 되어 함께 살기로 합니다. 물고기는 땅에서 사는 것이 쉽지 않았고 고양이 또한 바다에서 사는 일이 쉽지는 않았어요. 함께 있어 행복하지만 언젠가는 땅을, 또 바다를 그리워하게 되겠지요. 하지만 만약 우리가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언제나 더 나은 것,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선택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니까요. 사랑은 언제나 결과가 불확실한 모험입니다. 고양이와 물고기,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배우고 또 배워도 끝이 없는 것이 지혜이며 이생이라고 하지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쩌면 우리는 지혜로운 이들이 어떻게 행복을 만들어 가는지 발견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_ 소설가 조경란

연약한 것들에 대한 애정이 담긴, 낮고 조용하게 말하나 가슴에 멍울처럼 여운을 남기는 소설가 조경란 님이 ’행복이 숨겨져 있는 책’으로 추천한 그림책, 『나란히, 물고기, 고양이』. 물고기와 고양이라는 이질적이고 상반된 존재, 먹이 사슬에서 포식자와 먹잇감인 두 존재가 문학의 세계로 넘어와서 서로 우정과 사랑을 엮어나간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흑백의 강렬하고 심플한 그림으로 잔잔하게 표현된 작품이다. 어쩌면 고양이는 남성을 상징하는 지도 모르겠다. 교미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타인에 무관심하며, 바깥으로만 떠도는 고양이.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포식자의 위치를 점한 존재. 물고기는, 아름다운 몸의 곡선만큼이나 물길에 유선형의 곡선을 그리며 나아가는 물고기는 ’엄마’와 ’딸’, 그리고 ’아내’로서 원치 않으나 순종을 강요당하는 여성일지도 모르겠다. 물고기와 고양이, 나란히 설 수 없고 이해받을 수 없는 전혀 다른 별세계에서 온 두 존재는, 그림책 안에서 지혜와 존중과 배려로 아름다운 우정과 사랑을 엮어나간다. 깊어가는 가을, 곁에 한결같이 있는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싶다면 소설가 조경란의 추천과 함께 사랑을 적어 선물해도 좋겠다.

『발명가가 되고 싶다고?』
“발명가가 되고 싶다고요? 제 꿈 조절 소망 성취기를 이용하세요. 우선 발명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세요. 그 다음에는 눈을 부릅뜨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게 없는지 주위를 살피세요. 처음에는 실패하더라도 끊임없이 계속 노력해야만 한다는 것쯤은 이제 다들 알죠? 그러면 어느 날 갑자기 뻥하고 팝콘이 터지듯이 발명품이 만들어질 거예요. 그것 참 재미있겠네요. 그 때까지 저는 손꼽아 여러분의 발명품을 기다리겠습니다.” _소설가 김연수

작가이기 이전에 엄청난 다독가이자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젊은 작가 중 한 명인 소설가 김연수. 인터넷 서점에서 일을 하며 책을 읽고 글을 썼다는 소설가 이전의 독자 김연수가 어린 친구들, 꿈을 품고 있는 이들을 위해 추천한 그림책 『발명가가 되고 싶다고?』. 이 작품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며 부와 명예를 가져다준 발명품들이 실상은 ’생활의 필요’에 의한 착안과 개선 노력이 시작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책에 나오는 이들 중에는 발명가가 직업인 사람도 있으나 일상에서 삶을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게 만들고자 한 평범한 이웃들의 노력이 더 눈부시다. 꿈은 이런 게 아닐까? 당장 꿈에만 매달려 미쳐 살 수는 없으나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고자 매일 노력하는 가운데 조금씩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것. 부와 명예는 가져다 주지 못할지라도 스스로의 삶과 주변인들에게 감사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그런 것 말이다.

『작은 사냥꾼』
“이 책을 발견한 것은 미국의 어느 대학 도서관이었다. 우연히 어린이책 서가를 돌다 발견한 이 책에 나는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이야기 곳곳에 스며 있는 어둠이었다. 밝고 화사한 이야기로 넘쳐나??으며 어린 시절 몰래 기어 들어가곤 하던, 먼지 쌓인 퀴퀴한 다락방의 은밀한 기쁨을 다시 맛볼 수 있었다.”

『리버벤드 마을의 이상한 하루』
“『리버벤드 마을의 이상한 하루』는 뻔한 상투성에서 저만치 벗어나 있는 작품이다. 『리버벤드 마을의 이상한 하루』는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이면서 동시에 책과 독자의 관계, 이야기와 현실의 관계를 묻고 있는 성인용 우화로도 잃히는 것이다.” _ 소설가 김영하

소설가 김영하라면, 그가 추천하고 사랑하는 그림책 또한 범상치 않을거라 생각했다.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고, 그가 권한 두 권의 책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까지도 흔들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기라성처럼 등장한 젊은 작가 김영하. 문단을 예능계로 표현한다면 소설가 김영하는 분명 공중파 3사에서 모셔갈만한 유능한 MC나 예능인일 것이다. 다양한 매력을 뽐내는 그답게, 그가 추천한 책 역시 상상력의 허를 찌르며 기발하고 재미난 경험을 선사한다. 흔히들 생각하는 그림책의 결말, 공주와 왕자는 결혼하여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를 기대한다면 저 책들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몸이 움찔한 문화 충격마저도 경험할 것이다. 리얼리티와 상상의 빈틈을 파고드는 반전, 재미와 각성까지, 과연 소설가 김영하가 추천한 책 답다는 생각이다.

『내 나무 아래에서』
“에릭 바튀의 글과 그림 속에는 나무면 나무, 하늘이면 하늘, 바람이면 바람, 자연이 살아 숨쉽니다. 자연 속의 나무, 자연 속의 하늘, 자연 속의 바람과 해와 꽃으로 있다가 어느새 다시 나무면 나무, 하늘이면 하늘, 바람이면 바람이??이 시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내 나무 아래에서』는 우리 집에 오는 사람이면 누구든 펼쳐 보게 하는 책이지요. 어른이든 아이든 그의 그림을 보면 영혼이 맑아지고, 그래서 행복해집니다.” _소설가 함정임

소설가 함정임이 ’영혼이 맑아진다’고까지 표현한 그림책, 『내 나무 아래에서』. 프랑스에서 건너온 문화는 영화며 책이며 모두 프랑스적이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 책 역시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이라기보다는 아름다운 그림이 함께한 한 편의 시로 읽힌다. 어줍잖지만 뭉뚱그려 프랑스적이라고 표현해야겠다. 짧지만 강렬하고, 깔끔하고 정갈한 코스 요리를 먹은 듯 포만감과 함께 즐거운 여운이 남는 그림책. 때론 낭만이, 때론 감사가, 때론 영혼의 정화까지 맛볼 수 있는 책, 『내 나무 아래에서』는 어쩌면 어릴 때 읽고 접하는 그림책 한 권이 인생에서 알아야할 모든 것을 유치원에서 배웠다고 고백하게 할 만한 행복한 그림책이다.

마지막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그림책을 소개한다.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르 클레지오가 들려주는 신비롭고 시적인 환상 동화.『나무 나라 여행』은 평화를 위한 글쓰기라는 주제로 열린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르 클레지오가 어린이를 위해 쓴 책이다. 그 후에 나온 『발라아빌루』에 대한 문학평론가 김화영 님의 얘기를 들어보자.

“어려운 일,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일, 하면 안 되는 일, 하?? 과연 어디서 과연 자유와 해방과 변신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아이들에게는 무엇??.” _문학평론가 김화영

여러 번 내한할 정도로 한국과 인연이 있는 작가 르 클레지오. 신비롭고 아련한 그 답게 르 클레지오의 그림책은 문학평론가이자 국내 최고 권위의 프랑스 어 번역가인 김화영 님의 이야기처럼 자유와 해방의 마법을 선사하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소설가, 시인, 번역가, 문학평론가가 사랑하고 추천한 그림책들. 그들은 소설과 시, 평론을 통해 어른의 영혼을 매만지고 위로하지만, 한편으로 그들의 영혼 속엔 영원히 아이로 살아가는 피터팬??다. 흔히 애들이나 읽는 책으로 치부해 버리는 책, 입시에도, 인생에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그저 미취학 유아들이 한글을 떼기 위해 먼저 접하는 글자는 적고 그림이 많은 책으로 생각하는 그림책에는, 어른들을 탄? 시적인 메시지와, 아름다움과, 사랑이 살아 숨쉬고 있다. 소설가가 사랑한 그림책들을 만나며 어른 된 우리의 영혼이 조금이라도 맑게 정화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