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좋은 책이다. '잘 그린 그림'보다 우위에 서는 게 '좋은 그림'인데, 그림책 <할아버지의 벚꽃 산>에 담긴 그림은 참 좋다. 화면 연출도 대단히 뛰어나고,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나가는 솜씨도 좋다. 그림책 전반에 애잔한 감성이 흐르는데, 눈처럼 떨어지는 봄날의 벚꽃처럼 뭔가 애틋하고, 그러나 떨어지는 꽃잎을 붙들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내민 손이 더 쓸쓸해지는 그런 기분이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참 괜찮은 책이다'라고 말하는 대신 '의외로 좋은 책이다'라고 말하게 된다. 왜일까? 
아마 표지 때문인 듯하다.  

웃고 있는 할아버지의 인상이, 본문 속 할아버지와 너무 다르다. 책 속 할아버지는 손자 사랑이 지극하며 자연과 대화할 줄 아는 지혜롭고 어진 인상인데, 표지의 할아버지는 뭔가 모자라보이고 부족해 보이는 인상이다. 아이의 표정도 그렇다. 눈동자에 흰자위와 검은 동자의 구분 없이 그저 까만 눈이다. 뭔가 어색하다. 제목 배치도 아쉽다. 원서는 일본에서 2005년에 출간되었는데, 일본 원서는 제목이 세로쓰기로 되어있었나 보다. 우리말 제목인 '할아버지의 벚꽃 산'이 한글 쓰기에서는 근래에 거의 쓰이지 않는 세로 쓰기 형식으로 되어있는데, 어색한 인상의 두 캐릭터와 일본이라하면 국화 다음에 떠오르는 벚꽃, 제목의 세로쓰기 등으로 인해 책에 대한 인상이 결정되어 버렸다. 손자의 복식은 특이할 게 없지만 왜색이 느껴지는 할아버지의 의상과 멍한 듯한 인상까지 맞물려 이 책의 첫인상은 호감이 느껴지지 않는 '그저 그런 일본 그림책' 쯤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쳐 이 책을 들춰보지 않는다면 좋은 그림책 한 권을 만나지 못한 채 헤어지는 꼴이다. 아쉬운 앞표지 대신, 뒤표지를 보자. 

뒤표지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서정적이다. 책 역시 하나의 상품이기에 어쩔 수 없이 바코드와 정가를 인쇄했다지만,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 흔한 책 홍보문구 등 가타부타 글자 한 자 없다. 이 책의 느낌과 애잔한 정서를 최고로 뽑아낸 그림 중 하나이며, 뒤표지로써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뒤표지를 본 후, 다시 위의 앞표지를 보자. 뭔가 간극이 느껴지는가?

참고로 앞표지의 그림은 그림책을 아무리 뒤져봐도 나오질 않는다. 쉽게 말해 '표지'를 디자인하기 위해 '새로 그린' 그림이라는 소리다. 아, 안타깝다. 앞표지 그림은 본문과 느낌이 너무 상이하고, 전체적으로 책의 인상을 깎아내린다. 그러니 앞표지에 대한 인상 따윈 집어 치우고 책을 들춰보자. 일단 책 표지를 넘기면 푸른색 면지가 나온다. 면지 오른쪽 하단에 나뭇잎을 살짝 그려넣었는데, 굉장히 고풍스럽고 고급스럽다. 종이의 두께도 상당하다. 면지 뿐만 아니라 본문의 종이 또한 상당히 도톰해서 넘기는 맛이 좋다. 종이 두께가 무슨 상관이냐 하실지 모르겠다. 그런데 상관이 있다. 그것도 많이.  

나는 책에 밑줄을 긋거나 모서리를 접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편이고, 책이 접히는 게 싫어 쫙 펼쳐서 읽는 것도 피한다. 그런데 집에서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 보면, 아이가 장난도 치기 마련이고 넘치는 힘을 주체 못해 책장을 휙휙 넘기게 된다. 그 결과로 우리집에 투명 테이프로 덕지덕지 기운 그림책이 꽤 된다. 반면 <할아버지의 벚꽃 산>은 종이가 도톰하니 아이에게 웬만큼 시달려도 끄덕 없겠지 싶다. 물론 이런 물리적인 이유 말고, 반들거리지 않고 적당한 두께를 지니고 있는 종이는 그림의 발색을 돕고 분위기를 살리는데 일조한다. 모르긴 몰라도 책의 제작비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게 '종이값'일 텐데, 얇은 종이를 쓰느냐 좀 더 두꺼운 종이를 쓰느냐는 그림책 제작비를 순식간에 좌지우지할 게 분명하다. 대학 시절 미술대학에서 판화를 전공했으니 종이에 더 민감하기도 하겠다만, 아이를 위해 정성스레 책을 고르시는 분들은 나처럼 종이에도 민감할 줄로 안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련다. 그림책에 담긴 짧지만 묵직한 이야기를 말해 버린다면, 황순원의 <소나기>를 집어들어 이제 막 읽기 시작한 아이에게 "그 소녀 죽어. 비맞고 골골거리다가."라 말하는 것과 같은 무책임한 행동일지도 모른단 생각에서다. 분명히 말하지만, 앞표지의 선입견만 지운다면 이 책은 그림도 좋고 내용도 좋다. 어느 정도 왜색이 느껴지는 건 있겠다만 그쯤은 충분히 덮어버리고도 남을 만큼 이야기와 그림의 힘이 세다. 아쉽다, 앞표지가 아니었더라면 이 책은 별점 다섯 개 만점을 주고도 남을 작품인데. 표지가 눈을 흐리게 하니 별을 두어 개 빼버리고 싶다. 차라리 그저 그런 책이었더라면 아쉽지도 않겠지만, 그림과 내용이 좋아 더 아쉽다. 서점에 이 아이가 누워 있더라도 못난 얼굴, 못난 표지 때문에 눈길을 제대로 못 받고 손길도 제대로 못타고 홀로 쓸쓸히 놓여있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덧붙이자.

책의 앞표지를 넘기면 나오는 푸른 면지에는 나뭇잎이 그려져 있다 했는데, 책의 뒤표지에 붙은 푸른 면지에는 그저 벚꽃이 두 잎 날리고 있다. 책을 읽으면, 왜 벚꽃잎이 이리 날리는지 이해하게 되리라 본다. 그림책은 속 내용이 전부가 아니라 앞표지와 뒤표지, 면지에 이르기까지 책의 모든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걸 새삼 실감하게 된 연출이었다.

아쉬움이 남지만, 참 좋은 책이다. 아니, 의외로 좋은 책이다.

할아버지의벚꽃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