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는 재미없다. 예술성이니 작품성이니 뭐니 해도 재미가 없는 건 없는거다. 괜히 잰체하는 그들 영화를 보고 있으면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고, 할리우드는 정승처럼 쓸 때 너흰 뭐하냐 묻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우연찮은 기회에 영화 <꼬마 니콜라>의 시사회에 가게 되었다. ’프랑스 영화 + 애들이 주인공인 영화 + 원작은 일러스트로 유명한데 영화는 실사’ 라는, 재미없을 수밖에 없는 3박자를 두루 갖춘 영화라 별 기대가 없었다. 그런데 이럴수가! 세상은 넓고 영화는 많다 했던가, 상영 내내 어찌나 깔깔거렸는지 프랑스도 액션이 가능해!라 사자후를 내지른 레옹 때의 문화충격과 비슷할 정도였다. 

1월 28일 개봉예정, 누나 맘을 뒤흔드는 깜찍한 녀석들이 온다니,
홍보 문구부터 깜찍하고 사랑스럽다. 요놈들~ ^0^

원작인 <꼬마 니콜라>는 두어 권 읽어보았지만, 영화를 보니 관심이 불타오르더라. 몰랐는데 요 귀엽고 사랑스러운 꼬마 니콜라가 등장하는 책이 국내에도 프랑스와 시차가 거의 없이 전부 소개되어 있었다. 게다가 2009년 꼬마 니콜라 탄생 50주년을 기념한 미발표 유작, 한마디로 특별판이 작년 크리스마스에 나왔단다. 이거 뭐야, 나만 몰랐잖아? 게다가 두터운 니콜라 팬층의 확고한 지지로 인해 니콜라 시리즈는 국내에서 100만 부가 판매되었단다. 





좌측 2000년에 발행된 <꼬마 니콜라>세트(전5권)
중앙 2006년에 발행된 <돌아온 꼬마 니콜라>세트(전5권)
우측 2008년에 발행된 <앙코르 꼬마 니콜라>세트(전3권)

꼬마 니콜라 탄생 50주년 기념 특별판. 양장이며, 컬러 페이지가 일부 수록되어 있다. 선물용으로 딱인듯.
(참고로 어여쁜 여자 후배가 내게 이 책을 선물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나 자신을 위해 내게 선물했다. -_-;;;;)


사랑하면 뵌다고, 그 때 보이는 건 예전과 쫌 다르다 했던가. 살펴보고 뒤집어 보니 이 책을 쓴 르네 고시니는 프랑스의 국민 캐릭터 꼬마 니콜라 이외에도 <아스테릭스>를 창조한 글작가이다. 그림을 그린 장 자크 상페는 니콜라 뿐만 아니라 출판사 열린책을 통해 소개된 <얼굴 빨개지는 아이> <좀머 씨 이야기> 등으로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다. 한마디로 니콜라는 세계적인 두 거장의 글과 그림이 만나 이룬 환상 궁합 끝에 탄생한 아이라는 말씀! 탄생한지 벌써 50년이 다 되었다니, 꼬마 니콜라가 아니라 니콜라 할아버님 되시겠으나 어디 어린왕자가 늘어나는 잔주름 때문에 아이 크림을 온라인 주문했다는 얘기 들어보았나? 꼬마 니콜라는 우리에게 있어 영원한 꼬마이자 영원한 추억, 영원한 웃음이다. 어라? 그러고 보니 니콜라와 어린왕자 모두 프랑스 꼬마들이네?



사진설명
좌측: 글작가 르네 고시니(좌), 그림작가 장 자크 상페(우). 유머러스한 저 표정, 토크쇼에서 개인기로 선보여도 되겠다.
중앙: 요 깜찍한 꼬마가 바로 글작가 르네 고시니의 어릴 적 모습. 이거이거, 니콜라 실사판인데!
우측: 노년의 르네 고시니. 꼬마 니콜라 탄생 50주년 특별판은 그가 운명한 후 묻혀져 있던 미발표 원고를 고시니의 딸이 상페에게 전해 새로 그림을 그리고 엮어 탄생한 책이다. 

노년의 장 자크 상페. 이런이런, 멋진 유럽남자 포쓰와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의 여유가 물씬~ 


하나하나 되짚어 보니 <꼬마 니콜라>가 50년 동안 변함없는 사랑을 받아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르네 고시니와 장자크 상페가 어우러져 익살스런 표정을 짓는 흑백 사진을 봐도 그렇다. ’글’과 ’그림’이라는, 서로 다른 예술의 분야에 몸을 담고 있지만 저렇듯 장난스럽고 원초적인 모습까지 서로에게 보일 정도로 둘의 교감은 높은 수준이지 않았을까? 아마 둘은 글을 볼 때 그림을 떠올리고, 그림을 볼 때 글을 떠올렸을 것이다. 둘의 관계와 친밀함을 알았기에, 부친인 르네 고시니가 사망한 지 30여년이 지난 후에도 고시니의 딸은 ’아빠의 소중한 원고’를 내일 모레 여든이 다 되어가는 장자크 상페에게 보였을 것이다. 

사실 <꼬마 니콜라의 빨간 풍선>을 보면 국내에서 소개된 이전 니콜라 시리즈와 그림이 약간 다르다. 펜선, 캐릭터의 표정과 느낌이 미세한 차이를 보인다. ’더 어릴 적’ 꼬마 니콜라의 펜선은 생동감이 넘치고, 거침이 없고, 선에서 속도감마저 느껴진다. 반면 <꼬마 니콜라의 빨간 풍선>의 선맛은 조금 느린듯, 떨리는듯, 어떨 때는 멈칫거리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그 간극과 변화는 평생 콤비를 먼저 떠나보낸 남은 짝꿍의 열정과 애정으로 채워놓고 보기로 하자. 상페도 올해 만 76세, 우리나라 식으로는 78세가 아니던가. 

<꼬마 니콜라의 빨간 풍선>본문 중


나이키가 그랬다던가. 우리의 적은 아디다스나 리복이 아니라 닌텐도라고. 우리의 꼬마들이 농구화 신고 뛰어다녀야 하는데 고놈의 오락기 앞에 붙어서 나갈 생각을 안 하니 농구화든 축구화든 팔 수가 없다는 소리일 것이다. 그런데 50년의 세월을 견딘 고전 <꼬마 니콜라>시리즈 앞에서는 오락 게임도 적수는 아닌 듯하다. 클래식이 괜히 클래식이겠는가. 꼬마 니콜라는 50년 전, 시쳇말로 ’프랑스 초딩’들 얘기니 시차가 엄청나다만, 강산이 다섯 번 바뀔 세월도 니콜라가 전해주는 근원적인 향수와 추억, 재미와 유쾌함을 위협하진 못한다. 우리 아이들은 차치하고 30대 어른들마저도 니콜라가 쓰던 잉크와 펜 세대는 아니다. 만화가가 아닌 다음에야 잉크병에 펜촉 적실 일이 뭐가 있었겠는가? 하지만 급식이나 특목고, 민사고 따윈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꼬마 니콜라가 변함없이 사랑받는 이유는 생 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세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사랑받듯, 우리 안에 갇힌 동심에게 말을 걸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똑똑똑, 들어가도 되니? 내 이름은 니콜라야. 나랑 같이 나가서 뛰어놀자. 라고 말이다. 

모든 것이 변하고 마음과 관계마저 퇴색되고 변질되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이 시기에, 변치 않고 늙지 않는 꼬마 니콜라가 우리 곁에 있어 참 다행이다.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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