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고인다 :: 김애란

지금이야 외동 자식 인구가 늘어 점차 보기 드문 현상이 되어가고 있지만 적어도 성년을 이루는 세대에게 있어선 아직도 [자기만의 방] 은 낭만적인 그 무엇이 아닐까. 형제 많았던 윗세대일수록 개인이 홀로 갖는 방은 그야말로 꿈같은 일이었고 그 꿈의 실현은 컬러 텔레비젼, VTR같은 전자제품 만큼이나 부의 상징이 되기도 했더랬다. 내 경우엔 소위 '핵가족 세대' 에 속하기 때문에 별 갈등없이 개인방을 가질 수 있었지만 그렇다해도 또래에 비해 운이 좋은 편이었다. 대체로 학생 신분인 동안은 형제와 방을 나눠쓰는 일이 주변에 더 많았기 때문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확률적으로 점차 줄어가고 있다할 뿐이지 여전히 유년시절에 자기 방을 갖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기는 하다. 오히려 자기 방을 갖는 일이 점차 다수가 되어가며 그렇지 못한 이들이 갖는 박탈감의 고통이 더 커져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방을 갖는 것] 이 절박한 소망이 되어갈수록 그 배경을 이뤄주지 못하는 부모에 대한 원망도 함께 비례해 간다. 어째서 우리는 좀더 많은 방을 가진 집에서 살지 못할까, 하는 결핍적 고민이 집의 규모에 대한 집착을 만들고 평생 그 평수를 늘리기 위한 노역을 자처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부동산 광풍은, 좁은 영토에 갖혀 [자기만의 방] 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의 염원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부터 지독한 결핍감에 시달려왔기에 커서 아무리 자기 공간을 확장해간들 그 환상통에서 벗어날 수 없게된 것이 아닐까. 비록 넓지는 않았어도 일찌감치 내 공간을 가질 수 있었던 내가 집에 대한 소유나 평수에 연연해하지 않을 수 있게된 것도 그와 반대되는 이유에서의 덕분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나의 [나만의 공간] 은 그렇게 넉넉하고 여유로운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닌, 철저히 [고립] 의 공간이었다. 함께 살던 동안 가족간의 관계가 매우 험악했던 탓에 나는 내 방과 거실, 주방, 화장실을 제외하고 다른 방은 일절 들어갈 수가 없었다. 행여 몰래 들어갔다 발각되는 경우엔 야박하다 싶을 정도의 처벌을 받았다. 누군가 [내 방을 가졌다] 는 내 말을 부러워하는 만큼 타인의 [안방을 드나든다] 는 말이 나에게는 부러움의 문구였다. 누구나 자기만의 영역에 허가없이 침입하는 것을 불쾌해하긴 하겠지만,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지나친 통제로 부모가, 가족이 나를 거부한다고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름 이해할 여지가 있기는 해도 부모가 당시의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어 돌이켜 보는 것조차 씁쓸해진다.

그 때문이었는지, 이후로 아는 이의 집에 놀러가도 남의 공간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이 죄스럽게 느껴졌다. 더불어 내 공간에 타인을 들여놓았던 적도 거의 없어 지금껏 누군가를 [초대한다] 는 말이 그렇게 생경하게 들릴 수가 없다. 이것이 또한 내 트라우마이자 컴플렉스가 되었다. 타인의 영역에 아무 거리낌없이 '드나들 수' 있으면서도 내 공간에도 기꺼이 '들일' 수 있는 것을 간절히 바라며 그런 심리에서 대인 관계하려 하면서도 마음의 두려움이 매번 시행착오와 실패를 낳았다. 심지어 지금의 나는 인터넷의 '나만의 공간' 에서조차 타인을 위한 자리는 거의 마련해놓지 않고 있다. 내 고립과 천착의 집체인 공간을 '평가'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썰물과 밀물처럼 들어오기는 해도 나갈 수 밖에 없는 이들과의 관계에서의 허탈함, 서로의 공간을 '답방' 해야한다는 타성적 의무감 등이 반복되며 한 사람의 공간에 온전히 타인이 들어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고 좌절한 결과였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 나만의 영역이 필수불가결하지만 나를 확인해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타인이라는, 이 균형점을 찾기 어려운 딜레마를 어떻게 타개해 나가야 할까. 타인을 들이면 내 공간이 피곤해지고, 타인을 들이지 않으면 나는 끝없이 고립되고, 서로가 방문 손잡이를 잡고 밀고 당기는 대립을 하느냐, 분명한 문턱을 두고 서로 거기 있다는 것만 인지한 채 경계를 넘지 않느냐, 어느 쪽이든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쪽에 대한 질문에 사로잡히고 만다. 여기에 더 큰 난제는, 사람은 누가 되든 '자기만의 공간' 에 '남을 들이는 일' 을 결코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 한번도 남을 들이지 않으면 부재감조차 모르고 살겠지만, 한번이라도 누군가 들어왔다 나가면 그 빈공간의 울림은 결핍이 된다. 이 결핍을 끝내 견딜 것인가 아니면 결국은 또 다른 타인을 그 자리에 들여놓게 될 것인가. 그 괴롭고 피곤한 행위를 우리는 종종 [소통] 이라 부른다.

김애란의 이 단편집은 여덟편 모두 [공간] 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기만의 공간에 관한, 타인과 공유하는 공간에 관한, 소유한 것과 소유하지 못한 것, 충족과 결핍에 관해 겉으로 보기엔 경쾌한 어조로 그러나 실은 매우 '자조적인' 말투로 덤덤히 읊조린다. 이 자조적인 어투는 개인적으로 딜레마에 승복한 내 아픈 부분을 자극하여 매우 읽기 불편했지만 동시에 나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공감] 의 배를 탄 것이 못내 반갑기도 했더랬다. 누군가를 받아 들였다 다시 내보낸 공간에 '침이 고인다' 라니, 이만큼 절절한 문구가 또 어디 있을까. 아직 젊은 작가인데 벌써부터 이런 자조심이라니 하고 한편으로는 안쓰럽다가도 어쩌면 내 세대 아래로는 더 심한 결핍감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것을 [개인주의] 라고 매도함으로 그들의 소통을 향한 절박감을 그대로 외면하려함은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