占星術殺人事件 :: 島田 莊司

뭐부터 읽으면 좋을까 하고 행복한 고민을 해야 될 정도로 일본 미스터리물이 속속 발간되는 요즘이라지만, 더듬어보니 약 10년전쯤에도 이와 비슷한 붐이 있었더랬다.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는 추리만화 [소년탐정 김전일] 과 [명탐정 코난] 이 모 주간 만화 잡지를 통해 연재하기 시작한 무렵이기도 하고, 최근에 복간 되기는 했지만 한때는 돈주고도 구하기가 어려웠던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나 아카가와 지로의 [얼룩 고양이 홈즈] 시리즈가 야심찬 기획으로 한꺼번에 출간된 해이기도 했다. 두 시리즈 다 만화 출판을 전문으로 하는 곳에서 내었으니 아마도 당시의 추리만화붐 덕택이지 않았을까. 고전적 영미 추리물에 물려 있었던 때이기도 했지만 당시엔 일본 문화에 대한 수요는 높아지는 것이 비해 개방 전 퇴로가 막혀 있는 상황으로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해 더 환영 받을 수 있었던 환경의 영향도 있었겠다. 나 역시 넉넉치 않은 당시 형편으로도 이 시리즈들을 사모을 만큼 획기적이고도 신선한 충격을 받았더랬다.

그런데 그렇게 주머니 사정이 한정적인 탓이었던지 아님 주의력 부족이었던지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 이 복간 될 때까지도 나는 이 작품이 황금기(!) 97년에 나온 작품인줄 미처 몰랐더랬다. 더더군다나 그 당시에도 복간이었다는 사실조차도.(※ 초판 발행은 92년) 꼭 나온 당시에 실시간으로 읽을 필요도 없고 못구하는 것도 아니라 복간 되었으니 언제든 읽을 수 있지 않느냐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 작품만큼은 달랐다. 이 작품은 그때, 가능하다면 초판이 나왔을 때 필히 봤어야 되었다는 예기치 않은 후회가 10년후인 이제사 읽고나서 물밀듯이 밀려와버렸다. 그랬다면 아야츠지를 접했을 때의 충격과 감탄을 시마다 소지에게도 같은 양으로 필시 보냈을텐데! 약 10년후에나 재복간된 양장본과 차기번역작(※ 마신유희)을 보며 아야츠지의 신간(※ 암흑관의 살인)을 보는 마음만큼 기뻐했을텐데!

이렇게 통탄해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그네 말로 네타바레, 미리니름을 당한 탓이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작품 자체에 대한 누설이 아니라 영 엉뚱한 표절작에서 이 책의 골자를 이루는 부분을 적나라하게 보고 만 것이다. 더더욱 분한 것은 그 표절작의 트릭을 보며 감탄까지 했다는 사실이었다. 이 소설의 단 첫장을 읽은 것만으로 좋든 싫든 범인과 트릭을 모두 꿰뚫고만 나는 설마 이것이 우연일까 처음엔 당혹해했더랬다. 하마터면 작가를 [이 정도의 수준] 이라고 매도할 뻔도 했다. 책의 맨 뒤에 수록된 해설서에 자세한 속사정이 쓰여있어 그나마 그렇게 된 사연이구나 하고 납득했지만 작가 개인이 개의치 않았다 하더라도 그의 팬에게 있어서나 앞으로의 잠정적 팬에게 있어서나 매우 모독적인 표절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표절작이 이 작품보다 좀더 유명하다는 것도 한층 기분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이유로 표절작 제목은 여기서 밝히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아직 그 '표절작' 을 보지 못한 분께는 물론이지만, 설령 어쩔 수 없이 표절작을 먼저 봐서 그 기묘한 트릭을 기억하고 있는 분께라도 이 책은 끝까지 읽을 가치가 있다고 감히 권하고 싶다. 분명히 거의 알고 읽었음에도 소설의 흡입력은 전혀 줄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모르고 봤다면 얼마나 더 효과가 컸을까, 아쉬워 하게 될 뿐이다) 표절작에서 볼 수 없는 정교한 짜임새와 놀라운 공을 들인 배경 자료를 훑는 것만으로도 결말에 상관없이 빠져들게 된다. (다만 일본 지명이나 이름에 익숙치 않은 독자라면 다량의 표기가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도 너무나도 매력적인 탐정 캐릭터 미타라이 기요시를 만날 수 있다는 것에 이 소설의 최대 가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셜록 홈즈를 냉소하는 듯 하면서도 사실상 발전적 오마주격인 그의 구체적 캐릭터상에 어떻게 열광하지 않을 수가!! (때문에 기요시 시리즈가 가능한 전부 번역되길 간절히 바라는 바다)

작품중에 [일본은 미스터리의 나라] 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 말이 그렇게나 시기 나고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것도 최근의 상황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3-40년대를 두고 한 말이었으니, 지금부터 아무리 노력한다한들 그 애정의 역사는 따라잡을 수 없겠구나 하는 박탈감마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아직도 마니아권의 문화다!) 그만한 배경이 있었기에 이런 뛰어난 추리소설을 창조해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지극히 일본적인, 국지적인 소재로 이국의 독자에게 공감과 감탄을 이끌어내는 저력이 참으로 부럽다. 우리나라에선 이런 필력을 가진 자국 작가를 기다리기보다 이런 이국 작가들의 차기번역작을 기다리는 편이 더 빠르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