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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GARETTOWN :: Gabriele Zevin

사랑하고 있는 사람을 그때가 아니라 좀더 이전, 혹은 좀더 이후에 만났다면 어땠을까. 좀더 이전이었다면 그때보다 거칠거칠한 내 성격을 마음에 안들어 했을까? 좀더 이후였다면 젊음이 빛을 바래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을까? 가끔 남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사람을 학창 시절에 만났다면 어땠을까, 그 당시부터 서로 좋아했더라면 더 오랜 시간 행복하지 않았을까 반문해 보곤 한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소년이라 어쩌면 실망했겠지, 망나니 같은 소녀라 경멸했을지도 몰라 하며 역시 나중에나 만난 건 나름대로 적기 였었을거라고 스스로 답을 내리고 납득한다. 어긋남 한번 없이 상처 하나 없이 만났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사실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이사람을 만나게 된걸거야, 하면서.

그래도 그런 꿈을 꾸어본다. 운명의 상대라는 것이 정말로 있어서 그 옛날에 만났어도 서로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무언가가 있기를. 나는 분명 변화했지만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미래의 나도 모두 나 자신이니 그러한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기를. 또한 나도 어리숙했던 소년인 남편을 나만 볼 수 있는 빛으로 발견하여 한결같이 마음을 다할 수 있기를. 그것이야말로 진정하고, 순수하고, 완벽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지금과 달라서 반할 수가 없었다면, 앞으로의 변화에 의해 마음이 식어간다면 그것을 어찌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지.

같이 살다보니 서로의 성격차이를 깨닫고 본 모습을 보게 되더라, 그래서 헤어질 수 밖에 없더라는 말들을 하곤 하지만 그 [본 모습] 이라는 게 도대체 뭘까 싶다. 작정하고 상대를 기만하려 들지 않는 이상 사귀고 알고 지내는 동안 보여지는 모습도 [본 모습] 이 아닐런지. 자기에게 잘해주는, 자기가 보고싶은 모습만을 사랑한 것은 결국 상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비쳐진 자기 자신을 사랑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자아를 너무 사랑하여 그것을 타자를 통해 확인하려고 요구했을 뿐인 행위에 부응치 못한 것을 사랑의 배신이라 이름 붙히는 것은 너무 자기편의적이다. 자아를 먼저 사랑하는 것이 사랑의 시작인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 그치고 마는 반쪽짜리 사랑에서 배신이라 함은 결국 자기 기만일 따름이 아닌가.

지금 사랑하는 상대에게서 뜻밖의 모습을 보게된다고, 근사한 젊음의 탄력을 잃어간다고 [실망] 하여 더이상 뜨거운 가슴을 유지할 수 없다고 말할 때, 그것은 상대의 오류가 아니라 자신의 오류라는 얘기다. 그러면서도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을, 자아를 사랑하는 마음을 버릴 수가 없어 외부에서의 자극을 꿈꾸고 스스로가 놓은 것을 잃어버렸다고 한탄하는 것은 이기적인 어리석음이다. 상대에게서 자신의 요구를 발견하고 자기애를 조절하고자 하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진정되고 완벽한 사랑에 근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랑은 희생이 아니다. 타협도 아니다. 단지 자기애를 절제하고 그 남은 부분에 상대를 채워넣고자 하는 의지다. 그때야 비로소 상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주인공 N은 스물다섯살의 마가렛 타운, 애칭 매기를 만나면서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의 고향 (이름이 같은) 마가렛 타운에서 10대 이전부터 30대, 40대, 50대까지 모두 여섯명의 마가렛 타운이라는 여자를 만난다. 그녀들은 모두 한명의 마가렛 타운의 분신들이었다. N은 지금의 마가렛은 사랑하지만 10대나 40대의 마가렛은 받아 들이기 어려워 한다. 기이하게도 결혼을 하면서 20대의 마가렛, 즉 매기만 남고 모두 사라지지만 N은 결혼 이후 점차 변해가는 마가렛과 멀어져 간다. 서로 몰랐던 모습으로 염증을 느끼거나 지치고 결국 둘다 암묵적으로 외도를 하고 상처를 준다. 마가렛이 어느날 갑자기 집을 떠난 이후 N은 그제서야 사랑의 실체를 깨닫게 된다.

때론 많은 것을 응축시킨 메타포로, 때론 바로 와닿는 직설어법을 번갈아가며 묘사한 메타픽션적인 환상소설로 어딘가 투박하면서도 몽롱한 느낌을 주는 참 매력적인 책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작가가 시나리오를 쓴 [낯선 여인과의 하루Conversations With Other Women] 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도 변화하는 사랑을 고찰하는 방식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서 작가만의 고유성이 몇작품만으로도 뚜렷하다는 점에 감탄했더랬다. 데뷔한지 이제 고작 2년이 넘었다니 차기작이 기대됨은 물론이고 몇년안엔 국내에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할 수 있는 스타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장르 특성상 거기까진 기대하기 어렵다 한다면 최소한 마니아 팬을 가질 수 있는 작가가 될 것이라는 것만큼은 장담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