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ユ-ジニア:: 恩田陸

개인적으로 오픈 마인드의 사람이 좋다. 자기 얘기를 다 털어놓는 사람 이라기 보다, 타인의 의견을 진심으로 존중 해주는 사람 이라고 할까. 내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려고 애를 쓰고 있기 때문에 같은 마인드의 사람을 만나고자 하는 데 있어서 필사적이다. 이해 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 하는 것, 그래야만 나와 타인이 [일체] 가 될 수 있다고, 일종의 종교 마냥 믿는 것이다. 가령, 이렇다. 웹상에서든 현실에서든 나와 전혀 타입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일단 몸이 경직 되었다가, 그 다름에 대해 불쾌해져 신랄하게 비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면서 종반에는 그 사람이 왜 저런 성향이 되었는지 분석하려 든다. 그래도 가슴으로 받아 들일 수가 없어 때론 괴로워 하기조차 한다. 주변에선 무시하면 될 일을 왜 사서 고민을 하느냐고 내 단점으로 지적 하지만, 나는 그 집착을 도무지 버릴 수가 없다.

한동안 [맛] 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기본적으로 맛치여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한가지 맛을 평가 하는데 매번 괴로울 정도의 애로 사항을 느껴 결국 그런 관련으로 글을 쓰는 건 절필 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엔 [맛] 에 대해 주관적으로 아무렇게나 지껄일 수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알면 알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의 혀는 자신 스스로도 통제 불가능 할 만큼 기묘한 별도의 생명체와도 같아서 내가 이것을 감히, 함부로 안다고 하면 안되겠구나, 하는 위화감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산해진미도 씁쓸했고, 기분이 과하게 좋을 때는 식어버린 차도 향긋 했다. 날에 따라 달랐고, 계절에 따라 달랐다. 어렸을 때 달콤 하던 것이 크고 나서는 기겁 하는 맛이 되버렸다. 맛있던 것이 길들여지면 맛이 없어졌고, 꺼리던 것을 우연히 먹었더니 며칠을 찾아 먹는 맛이 되었다.

누군가 [맛있다] 하는 것도 누군가는 [맛없다] 했고, 정말로 가치 있는 맛이 한두사람에게 매도 되어서 다른 사람이 맛볼 기회마저 박탈 하는 것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도 여러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맛집] 을 찾지만, 그 [검증] 이 과연 [진실] 일까? 같은 것을 먹어도 어제와 오늘이 다른데 과연 나는 그 [맛의 진실] 에 대해 쓸 수 있을까? 그런 것이 내 딜레마 였다. 그래서 당장은 맛없어도 나름의 [장점] 을 찾아 글을 쓰자 했더니만, 주변에선 그런 두루뭉술한 평가에 대해 기준점이 없다며 나를 정말로 맛치로 이해했다. 그래서 여전히 나도 내 자신이 맛치려니, 하고 살고 있다. 나는 아직도 내가 받아 들일 수 없는 맛을, 그 맛의 장점을, 비밀을, 진실을 알기 위해 [맛있는] 것보다 더 자주 먹는다.

오픈 마인드, 라는 말은 상당히 포지티브한 단어로 들리지만, 사실 내가 인용하는 오픈 마인드는 이런 집착을 표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 내 편협한 주관으로, 작가 온다 리쿠를 좋아하고, 공명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읽는 온다 리쿠는 나와 비슷한, 편협할 수도 있는 개인적인 주관을 갖고 있는 사람 이면서도 세계가 얼마나 다면적인지를 인정하는 다정한 사람이다. 전작을 통털어 과거, 만남, 반복 이라는 키워드로 사물을 이해하고 티끌 하나 버리는 것 없이 그 히나 하나의 가치가 그때마다 필요했노라고 조용히 읊조려 준다. 누군가 나에게 이해 받고 싶어 이해 하려 애쓰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 한 적이 있는데, 그녀의 작품을 읽다보면 그 말에 절감 하게 된다. 투사 방어기제와도 같은 글귀들을 발견 하면서 왠지 고해성사 라도 받는 기분이 되는 것이다.

[유지니아] 는 그 결정체와도 같은 작품 이었다. 작가의 사견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최소한 작중 캐릭터인 사이가 마키코의 심리는 분명하게 납득할 수가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하기 위해서 집착에 가깝게 캐묻는 것, 그것의 집성체, 기록을 남기려 하는 것. 저 상대가 도대체 왜 그랬을까 하며 그 상대가 되버려고 애를 쓰는 것. 그래서 나는 웹에서도 텍스트는 넘쳐 나는 데 정작 [본인] 이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 무섭다. 무언가 얘기는 많이 하는 데 자신의 이야기는 전혀 없는 사람에겐 다가갈 수가 없다. 덕분에 도리어 나는 자신을 가려도 된다고 허가 받은 이 세계에서도 익명을 쓰지 못한다. 누군가를 만나면 반드시 실명과 나이, 사는 곳을 밝혀야 안심이 된다. 상대에게 같은 것을 강요 하지는 않지만, 끝까지 드러내지 않으려는 사람과는 더이상 관계를 지속 시켜 나가기가 어렵다.

그렇게 드러내도, 밝혀도, 아무리 이야기 해도 타인을 이해 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불가능 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취조하고, 많은 이야기들을 수집해도, 그래도 [진실] 은 온전하게 손에 잡혀지지 않는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심지어 자신의 과거조차 진실로서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타인에게 전달할 수가 있겠으며, 타인의 흘려버린 과거를, 그럼에도 과거로 인해 만들어진 타인을 어떻게 다 이해할 수가 있을까. 나는 부모님 이혼 때문에 관계에 집착하게 되었어, 라고 말해봤자 딱 거기까지다.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던 혼란마저 타인에게 전달할 수도 없고, 타인이 온전히 이해해 줄거라는 기대조차 부질없다.

그래서 애초에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야기는 하지 않는데도, [보는] 나는 그들에게서 매번 어떤 절박한 몸짓을 본다. 다소곳한 인상인데도 줄담배를 피워 대는 모습에서, 알레르기도 아닌데 특정 음식을 가려내는 모습에서, 무언가를 미친듯이 사모으는 모습에서, 타인에게 자신의 일과를 가식해서 보여주는 모습에서, 환각이나 환청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이야기를 듣고, 읽는다. 무언가가 있구나, 상처가 있구나, 외롭구나, 누군가를 찾고 있구나, 스스로도 모르는 해답을 찾고 싶어 저렇게 울부짖고 있구나, 하고. 어쩌면 그 역시 내 마음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일지도 모름에도.

눈이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아오사와 히사코의 진실. 어떤 이들은 그녀를 경외하며 자신들만의 틀에 가둬놓고, 어떤 이들은 그녀에게 위화감을 느끼며 가식 이라고 매도한다. 마치 스타 연예인 과도 같다. 그들의 주변으로 이해할 수 없는 스캔들이 생기면 사람들을 자기 식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이해한다. 행여 자살하는 연예인 이라도 나와 버리면, 그의 죽음에 대한 이유는 스트레스 라는 말로 간단하게 매듭 지어지고 불분명한 죽음 이었을 경우엔 의심이 갈만한 상대를 만들어 덮어 씌우고 만다. 그리고 대부분 그 [행사] 를 기묘하게 즐거워 하고 흥분한다. 진심으로 [진실] 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져 나가고, 그것조차 그들의 과거가 되어 언젠가는 미화가 된다. 그래서 [진실] 은 가치를 잃고, 죽어버린 사람은 끝까지 외로울 수 밖에 없다.

단 한사람 이라도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단 한사람이라도 [진실] 을 끝까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그들이 외롭지 않을거라고, 나는 온다의 말을 그렇게 이해했다. [끝] 의 순간에도 히사코의 진실을 알고자 했던 마키코는, 히사코와 [천사가 지나는 순간] 을 공유 하려고, 그녀를 이해 하려고, 그녀를 까발리고 두둔함으로 그녀가 남긴 [유지니아] 를 가슴으로 받아 들이려 했다. 나와 다른 타인의 생각을 인정 한다는 것은 곧 나의 세계를 부정하는 행위가 될지언정, 타인으로 나를 덮어 씌우는 자기 소멸의 일이 될지언정, 그래도 타인을 격하게 이해 하려 해야만 나도 이해 받을 수 있다는 이 집착은 옳고 그름을 떠나 내 삶의 이유, 내 삶의 진실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유진友人, 친구. 유지니아, 친구들의 세상. 정말로 친구들의 세상으로 가고 싶다. 살가운 사람이 있었음 좋겠다. 먼저 다가와 편한 호칭으로 인사도 해주고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기다려 주는, 좋아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먼저 해주는 그런 싹싹한 사람. 살가운 사람이 되었음 좋겠다. 먼저 다? 흔들리지 않고 믿을 수 있는, 좋아하는 감정을 끝까지 지킬 수 있는 그런 강한 사람. 나를 온전히 이해 받을 수 없고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백일홍이 백일홍이 아닌, 진실이 진실이 아닌 세상에서, 유지니아를 만나 [하나] 의 마음을 체험 해보고 싶다. 둘이 함께 있을 때 아무 말 없어도 초조하지 않고 그저 안심스런, 천사가 지나는 그 순간을 공유하는 그런 친구를 진정으로 갖고 싶다.

+

여담 이지만, 아무래도 제본에 관해 아쉬움을 토로하지 않고는 못배기겠다. 비채에서 [유지니아] 를 [블랙 앤 화이트] 라인으로 내놓는다고 했을 때 내심 우려 했는데, 설마 하던 것이 역시나 하는 결과로 나와서 조금(아니 사실은 많이) 상심 했더랬다. 번역본이 원서의 분위기를 100% 전사해야 할 의무는 없지만, 그래도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로 격차가 심하면 새로운 재해석의 북디자인으로 보기 이전에 원작을 99%밖에 전달하지 못했다는 1%의 찝찝함이 남는다. 사실 우리나라의 북디자인은 매우 수준급이어서 오히려 원서보다 더 아름다운 책들이 많은 편인데, 그러다보니 그에 거스르는 (원서보다 못한) 책은 도리어 출판사의 감각을 의심하게 만들기도 한달지.

[블랙 앤 화이트] 라인의 일관적인 일러스트 표지의 수준 자체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1권으로 나왔던 세오 마이코의 [럭키걸] 만 하더라도 원서의 제목과 표지 이미지가 180도 달라 작품의 뉘앙스 자체가 다르게 전달된 감이 있었다. 북커버, 특히 인물을 내세운 표지는 독자에게 작품 이미지에 대한 선입견을 주기 쉬운데, 출판사는 과연 어떤 의도를 갖고 이런 커버를 기획하고 있을까. 사실 불건전한 의심을 품고 추측 하기론 [블랙 앤 화이트] 라는 다소 어거지 짜집기 느낌의 시리즈나 작품 선별을 보니 일본에서 어느 정도 판매량이 보장된 작품을 갖고와 현재의 [일본 서적 붐] 을 타고 수익을 챙겨 보려는 의도로 급조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었더랬다.

하지만 뭐, 출판사도 영리 목적을 갖고 만들어 졌으니, 그에 대해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원서 제목이나 북디자인을 바꾸는 경우도 우리나라 정서와 실정에 맞게, 나름대로 고심해서 만들어 낸다는 것도 충분히 헤아려 볼 수 있다. 외국 작가의 다작을 빠른 번역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출판사에 감사하는 마음도 있어, 이 시리즈에 더이상 불만을 품지 않고 문고본을 본다는 심정으로, 앞으로도 꾸준히 애독할 생각 이기도 하다. 북디자인에 대해 까칠하게 언급 하기는 했지만, 사실 번거로운 양장본 보다 외국의 보편화된 문고본 시스템을 몹시 부러워 하는 터라 거품값 빠진 도서정가제로 문고본이 활성화만 된다면야 북디자인으로 태클 걸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이 책이, 온다 리쿠의 그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유일하게 [특별] 한 제본으로 나온 책이기에에 이런 아쉬움을 부득이 하게 하소연 해보는 것이다. 아시는 분만 아시겠지만, [유지니아] 의 원서 프롤로그는 내용의 이미지와도 연관된 독특한 인쇄 삽입지로 시작 된다. (※ 아래 사진 참조) 이런 삽입지가 [없어도] 그만, 이런 시도를 [안해도] 그만, 책 내용에 큰 영향을 끼칠 정도가 아니기에 굳이 돈 더들여 이런 제본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하겠지만, 모처럼 작가가 의도를 갖고 자국 출판사에 의뢰를 해 만들었을텐데, 그 의도까지 국내 팬들에게 전달할 의무, 아니 의무까진 아니더라도 팬들을 위한 서비스 같은 것도 고려할 필요 없었을까.

행여 출판사가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런 독특한 편집과 기획 제본에 대한 욕심도 내보지 않았으리라 싶진 않다. 작가도 한국과 계약을 할 때 그런 사항까지 다 감안해서 컨펌을 내주었을테니, 이것은 전적으로 팬의 욕심이고 아쉬움이다. 예쁘고 잘 만들어진 책 이전에, 언어만 고스란히 바뀐 번역본으로서 이국의 작가와 교감 하고픈 마음이 앞서다 보니 이런 불만도 나올 수 있다고 출판사가 귀 기울이고 헤아려 주었음 좋겠다. 아쉽고 언어 되는 사람은 원서를 보시라, 라는 오만한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번역 문학을 몹시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좀더 도전적이고 능동적인 발전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 말이 나온 김에, 갈수록 일취월장 해 가시는 역자 권영주씨에게 새삼 감사를 드린다)

+

※ 원서 [유지니아ユ-ジニア] 프롤로그 속지 이미지

유지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