模倣犯 :: 宮部 みゆき

한권도 무지막지한 두께인데 세권이나 있어서 읽는데 오래 걸리려니, 싶었는데 예상외로 읽히는 속도가 너무 빨라 스스로가 당황해 앞부분을 다시 뒤적거릴 정도다. 이런 책을 만날 때마다 가독성에 따라 문학적 가치가 판단 되는가, 란 명제에 섣불리 답안을 낼 수가 없다. 이만한 스토리 텔링을 구사할줄 아는 작가를 어찌 단순한 글쟁이라 할 수 있을까. 사건 발생과 해결 과정이라는, 정석의 기승전결을 답습하고 있다 하더라도 호흡이 끊기지 않고 일관성과 냉철함을 유지하며 꼼꼼하게 글을 쓰는 작가의 자세가 보여져와 그 내공에 깊은 인상과 감명을 받았다. 결말을 빨리 알고 싶어 안달복달 하는 독자 앞에서도 한결 흐트러짐 없고, 오히려 더 촘촘히, 빠진 부분 없이 읽는 대상을 독려하며 차분히 이야기를 끝까지 풀어 나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완성도에 있어서도 일정 수준을 달성 했다고 보여진다.

사실 [모방범] 이란 제목이 왜 붙었는지 2권이 넘어가도록 아리송 했더랬다. 2권 중후반에 들어가서야 대충 감이라도 잡을 수 있었지만, 진짜 [모방범] 이 의미하는 바는 소설의 결정적 클라이맥스에 가서야 밝혀진다. 원고를 탈고하고 이후에 제목을 붙힌 것도 아닌 연재물이었는데, 그렇다는 것은 작가는 이미 결말까지 확실한 틀을 잡고서야 집필을 했다는 의미가 되지 않나. 물론 범죄 소설의 특성상 이미 결론 내어진 골자가 대부분 필요 하지만, 5년간의 긴 연재 기간 동안 실시간 모니터링의 압박으로 이변 요소가 있었을 법 한데도 첫장부터 끝장까지 정해진 도안대로 흔들림 없이 완성 해나간 끈기가 나름 존경 스럽다.

총 3부로 이루어진 내용은, 1부에선 실종자와 유기 사체 발견이라는 범죄 발생부터 해당 피해자의 가족과 경찰, 주변 인물들의 심리적 관점에서 사건을 전개 해나간다. 2부에선 같은 전개를 범인의 심리 측면에서 재구성 하며, 3부에선 완료되지 않은 범죄의 진범을 찾아 마무리 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1부에선 향후의 전개나 엔딩과 괴리감이 없을 내용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이 여력할 정도로 사건 진행에만 치중 하지만 2부에 들어서서 한 템포를 끊으며 찬찬히 그 과정을 검산하고 보충하며, 3부에 와선 여유마저 누리는 듯 작가의 것이라도 봐도 좋을 사견을 이입 시킨다. 초반에는 독자와 함께 뛰는 듯한 레이스였다가 어느 순간 작가 혼자 종착지에 가서 애태우며 달려오는 독자의 모습을 음흉하게 미소 지으며 보고 있는 모양새 라고 할까.

(※ 일본에서 책이 출간 되었을 당시에는 평단의 논평이 극과 극이었다. 마이니치 출판 문화상, 예술선장 문부과학대신상, 시바 료타로상,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02년도 1위, 다빈치 북오브이어 1위 등으로 280만부 이상을 판매 했음에도 일부 평론가는 스케일은 거대하지만 마무리가 약하고 문장이 조잡하며 이 책이 인기 있는 것은 단지 독자들로 하여금 두꺼운 책을 완독 했다는 달성감의 만족을 주기 때문 이라며 혹평했다. 문학 장르의 다양성이 우리나라보다 광범위 하다고 생각 되어지는 일본조차 대중 문학과 순문학의 괴리라는 보수가 존재 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볼 수 있겠다)

대부분의 추리소설, 범죄 소설들이 연쇄 살인범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내용의 흥미를 위해서라도 잦은 살인이 필요하기도 하겠지만) 과거의 추리 소설에 나오는 범인들은 단지 살인마라서 그런 흉악 범죄를 저질렀다는 식으로 인간성 자체가 이미 소거된 존재로서 그려졌지만, 현대의 범죄 소설에는 그들의 과거에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를 프로파일링 하듯 상세히 묘사하며 일종의 당위성을 주는 서술이 거의 필수적으로 나온다. 한명의 인간이 인간성을 상실 하기까지에는 다른 존재의 영향이 반드시 있었다는, 즉 사회 전반에 대한 책임론이 밑바탕이 되는 것이다. 현대의 우리에겐 이것이 학습 되어, 현실에서의 끔찍한 사건들을 접할 때 범죄자를 단순한 괴물로 치부하기 이전에 그 배경에 호기심과 동정을 품게 되는 작용이 생기게도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그런 범죄자들을 [괴물] 로 분류하며 내심 스스로의 이성적 가치를 찾고, 그들의 희생양으로 선택 되지 않음을 안도하고 곧바로 무심 해질 뿐 그 어떤 사회적 책임과 각오도 새삼스레 다지려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범죄자, 괴물, 정신적 불구자들의 환경이 사회 이전에 가족 단위에서 형성 된다는 것을 이론으로, 혈족에게만 그 책임을 전가 시키려고 한다. 자기 안위와 타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생성 되어지는 상대적 박탈감은 저지르고 제공 하는 우리 탓이 아니라 괴롭게 받아 들이고 분노하는 루저들의 감정일 뿐이라고 매도한다. 책임지고 끝까지 도와줄 수 없어 무력감을 느낄지언정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밀어내기만 한다면, 행여 차후 그런 범죄자들의 표적이 되었을 때 어찌 운없는 피해자라고 억울함을 하소연 할 수 있을까.

범죄자들의 그릇된 표출 방식을 옹호하려 함은 아니지만, 사회 안전망을 보다 더 탄탄하게 구축 해야 한다고 비판하고 요구하기 이전에 우리 개인 스스로가 소외된 자들에게 좀더 관심을 갖고 그들을 위한 사회적 제도가 보완 되는 것에 힘을 모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 해본다. 범죄자의 대부분도, 피해자의 대부분도 어찌할 도리 없는 무력한 약자들에게서만 나오기 때문이다. 미국 범죄 연구소에 따르면, 사회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고 개인주의가 팽배 해질수록 연쇄 살인범의 증가치도 높아진다고 한다. 도덕 관념이 없는 사이코패스들이 존재 한다는 것은 경이롭고도 두렵지만, 그들도 탄생할 때는 딱히 악의 유전자를 갖고 있었던 게 아닌 평범한 인간 아기였음을 돌이켜 보면 그들의 파괴력보다 사회의 파괴력이 얼마나 무지막지한가를 상기 시키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갖고 있는 도덕심 이란 것은, 스스로 온전히 지니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실은 운좋은 환경을 가진 덕이 아닌가!

[모방범] 은 그저 작가가 꾸며낸 으시으시한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범죄 연구가 해럴드 셰터가 저술한 [연쇄 살인범 파일] 의 기록에만도 [모방범] 의 이야기와 거의 흡사한 팀 킬러 실제 사례들이 수어건이나 나열 되어 있다. 예측컨데 작가도 그런 기록들을 수집해 실화를 [모방] 하여 이 이야기를 만들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모방범, 모방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의도에는 아마도 [이러한 범죄는 끝나지 않는다] 라는 메시지를 담으려 했음이 아닐까.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건에, 우리는 단지 운없이 당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몸을 사리고 타인을 경계 해야 할까, 아니면 보다 더 능동적인 태도를 가져야 할까. 소설 속 주인공 중 한명인 신이치의 변화에서 그 키워드를 곰곰이 생각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