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teal a Dog :: Barbara O’conner

○○에게.

○○야, 잘 지내니? 날씨가 많이 추워졌는데 공부방은 많이 따뜻한가 모르겠구나. 지난 겨울처럼 난방비 아낀다고 미지근한 전기장판 하나 틀어놓고 할머니와 부둥켜 안고 자는 건 아닌가 많이 걱정이 된다. 센터 아저씨들이 외풍이라도 안새게 잘 막아주셨어야 할텐데. 추위를 심하게 타는 나는 뉴스에서 영하가 되었다는 말만 나와도 호들갑을 떨며 보일러를 마구 켜곤 했는데 요새는 너를 생각할 때마다 그렇게 보일러 켜는 손이 멈칫하게 돼. 아닌게 아니라, 너도 알다시피 난 매일 감기를 달고 살았잖니. 그렇게 따뜻하게 하고 살았는데도 말야. 그런데 항상 춥게 지낸 너는 콧물 한 번 훌쩍이는 일 없이 얼마나 씩씩했던지. 온실에서 자란 꽃은 일찍 죽지만 찬바람 속에서 자란 꽃은 오래 산다는 말은 정말 진리인 것 같아. 아직 너에게는 그리 와닿는 말은 아니겠지만서도.

처음 너를 만났을 때는 사실 무어라고 말해야 할지 말문이 안떨어졌었더랬어. 저기 저 높은 곳에 계신 철없는 어느 분처럼 나도 환경미화원을 해봤네, 노점상을 해봤네 하며 가식적인 공감은 하고 싶지 않았거든. 옛날에야 그 어느 분이나 나나 어렵게 살았다지만 그게 지금 네가 겪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은 결코 아닐테니까. 그래서 함부로 ’나도 그 심정 알아’ 라고 말할 수가 없었어. 지금 처지가 불쌍하다고 돈과 물건으로 다 되는 양 사다 주고 챙겨 주기만도 할 수 없었어. 그건 너를 존중하는 게 아니라 동정하는 거라 생각했거든. 내가 예전에 그런 동정을 받는 게 생활이 힘들었던 것보다 더 힘들었었기 때문에 그래. 어떤 사람들은 수도관 같은 것이 얼면 빨리 녹이려고 펄펄 뜨거운 물을 부어버라곤 해. 그러면 어떻게 되니? 깨져버리고 말잖아. 미지근하게 따뜻한 물로 조금조금씩 부어가며 녹을 때까지 기다려줘야 하는건데 꽁꽁 얼은 것이 금세 녹기라도 할 것 마냥 한 번에 부어서 결국 더 다치게 하고 마는거야.

어떻게 하면 미지근하면서도 따뜻한 말을 부어줄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단다. 힘내라는 말도 가능한한 아끼려고 그랬어. 왠지 힘내라, 는 말은 무서웠거든. 너는 물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는데 나는 편하게 물가에 앉아 ’그래, 열심히 헤엄치면 나올 수 있어!’ 이런 말을 하는 기분이었어. 그보다 더 무기력하고 쉽게 내뱉을 수 있는 이기적인 말은 없다는 생각마저 들더라. 물론 안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그래도 ’내가 구하러 가줄게’ 라든가 ’나도 너와 함께 빠져줄게’ 그런 마음을 전할 말이 따로 없을까 싶었어. 정말로 힘나는 말은, 힘내라는 표면적인 말보다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말이었거든. 근데 그 말을 찾기가 참 어렵더라. 고작 찾아낸 말이라곤 ’나는 항상 네 편이야’ 라는 말 뿐이었어. 그조차도 무기력하기 짝이 없지만.

그렇게 무기력한 내가 오히려 도움을 청하는 방법은 아무래도 책 밖에 없더라. 그래서 지난 번에 네 손에 이 책을 쥐어주었는데, 읽어보았니? 어땠을까 모르겠다.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화나는 부분도 있었을거라 생각해. 조지나의 처지가 남같지가 않아서. 개를 훔칠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심정을 보며 차마 웃을 수만은 없어서. 결국 개를 훔치는 건 나쁘다는 거였잖아? 아무리 힘들어도 착한 마음은 버리지 말라는 말은 이제 지겨울 때도 됐지? 최악으로 힘든 상황은 나아졌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좋아진 결말도 아닌 걸 뭐. 여전히 가난하고, 친구들이 따 시키는 것도 변함 없을 것 같고, 엄마는 항상 일에 지쳐 찌들고, 세상에는 우리보다 더 잘난 사람들이 계속 넘쳐날테니까.

나는, ’어려워도 누구처럼 노력하면 성공한다’ 는 말은 조금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절망을 잘 이해하지 못한 채 희망만 무작정 주입하다가는 더 큰 절망을 불러올 수도 있거든. 어른들의 말을 잘 들어봐. 뭔가 이상하지 않니? 가난하면 엄청 불행하니까 얼른 부자되서 행복해져라 라고 말하잖아. 그럼 부자가 안되면 영영 불행하기만 한걸까? 지금 불행한 게 그저 돈이 없어서 만일까? 너도 입버릇처럼 ’로또만 되면 다 잘 될 것 같다’ 고 하지만 그럼 로또가 안될 때까진 늘 불행하기만 할 것 같니? 물론 돈이 없으면 힘들기는 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살면 자기만 잘못 된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만큼 잘 살고 싶고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소망하는 게 잘못 된 건 아니야. 하지만 돈이 없다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된 거란다. 돈이 없어서 네 자신이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건 정말 바보같은 생각이라구.

조지나가 앞으로 더 형편이 좋아져 부자가 될런지는 나도 모르겠어. 근데, 조지나의 생각을 들여다보면 더 근사하고 풍요로운 삶을 꿈꾸기는 해도 지금을 싫어할 것 같지는 않아. 조지아네와 마찬가지로 가난하지만 다정하고 따뜻한 카멜라 아줌마와 정을 듬뿍 준 윌리, 그리고 아무것도 갖지 않아도, 아니 아무것도 갖지 않아서 너무나도 자유로운 무키 아저씨를 만났으니까. 게다가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가족들도 있잖아.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은 항상 저 멀리에 있을지도 몰라. 남들보다 우리 발걸음이 한참 뒤쳐져 있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 때문에 가슴 아프고 우는 날도 많겠지만 우리, 열 개 중에 한 개밖에 없어도 그것을 소중히 여기자. 그리고 나머지 아홉 개를 채워 나가는 기쁨과 설레임으로 살아가자. 그 기쁨을 알 수 있다면, 깨달을 수 있다면 나머지 아홉 개가 반드시 돈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 역시 알게 될거야. 그 중 한 개는 언제나 너를 믿고 응원하는 나였으면 좋겠다. 

 

- 2008년 겨울의 끄트머리에, 언제나 너의 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