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avedigger's Daughter :: Joyce Carol Oates

엄마는 자살했다. 인연을 끊었던 아빠는 5년만에 나타나 속내가 불투명한 친권을 주장하며 나섰다. 가족은 분열되고 서로를 비방하며 증오했다. 세상 사람들은 그 모든 사정을 낱낱이 보고 듣고 수근거리며 없는 얘기까지 만들어 퍼뜨려댔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아이는 과연 앞으로 어떻게 자랄 수 있을까. '비뚜러질테다!' 하는 농이 그 아이 입에서 나온다면 예사롭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 아이를 지켜보는 주변인들은 내심 아이의 네가티브한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입 가벼운 이는 우울증과 자살 충동은 유전적 원인이 있다며 호들갑을 떨기도 할테다. 그만큼 아이에게 짐지워진 고통의 무게는 짐작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관찰자들은 저마다의 경험으로 통증은 어찌저찌 시간이 해결해주지만 트라우마로 인한 마음의 어긋남과 위축은 당연할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아이가 느끼는 고통이 얼마만큼인지 전부 다 짐작할 수 없듯이 아이가 그것을 얼마나 극복할 힘이 있는지도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어린 시절, 견디고 있는 집안 사정을 친구에게 이야기 했더니 '내가 너 같았으면 죽었을거야' 라는 말을 들었다. 친구 딴에는 자신보다 내가 그릇이 크다라는 의미의 추켜세움과 위로의 의미에서 했던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내 자신이 그 정도로 절망스러운 처지인지에 새삼 아연해 하고 그 친구와 나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거리감에 공포에 가까운 외로움을 느꼈다. 그 이후로 나는 아무리 상상하기도 어려울만큼 힘든 처지에 놓인 사람을 만나도 함부로 '나 같으면 못살 것' '나 같으면 죽을 것' 이란 말을 내뱉지 않게 되었다. 그 이가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보다 강하다는 게 증명 되었는데 무엇하러 그런 의미없는 말을 내뱉을까? 그 이는 존경받아 마땅하지만 또한 공감받아 마땅하다. '너 같은 삶은 내가 못살 삶' 이라고 손사래를 치며 단절 해버릴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을 들여다보고 귀기울이며 어떻게 그 고비를 넘어왔나를 보고 배우고 내 삶에 적용시키려 하는 것이 그의 삶을 보다 의미있게 할 뿐더러 내 삶도 한층 구제를 받는다. 짐작할 수 없는 고통을 폭좁은 시선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닌, 그저 그를 통해 하나 더 배울 따름인 것이다.

레베카의 삶이 그렇다. 지독한 우울증과 병에 시달리는 어머니와 고압적이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아버지, 거칠거나 어딘가 모자른 오빠들을 두고 있는 레베카는 무덤가의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살아가다 오빠들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아버지의 억압을 못이겨 가출해버리고,어머니의 정신병은 심화되며, 급기야는 반미치광이가 된 아버지가 총을 들고 난동을 피우다 어머니를 쏴버리고 자신도 레베카의 눈앞에서 자살하고 만다. 참극의 생존자로서 동정을 받으며 독실한 기독교인 보호자 밑에서 길러지지만 하느님의 부조리함을 납득할 수 없었던 레베카는 그곳에서 가출하여 호텔 여급으로 독립한다. 그러나 외로움만큼은 견딜 수 없어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지만 그는 무능력할뿐더러 폭력까지 일삼는 무뢰한이었다. 다시 그에게서 도망쳐 도시를 전전해 다니며 신분을 바꾸는데 성공한 그녀는 마침내 진심으로 그녀에게 다가오는 남자를 만나고 아이의 남다른 재능으로 보상을 받는다. 그러나 그녀를 그때까지 버티게 한 것은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를 책임지려고 하는 마음과 의지였다.

그녀같은 일이 내게 일어나면 나는 버틸 수 있을까. 어린 시절 눈앞에서 아버지의 머리가 부서지는 것을 보며 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안되는 일만 거듭되면 삶의 의미와 의욕을 느낄 수가 있을까. 안될 것이다, 못할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만큼 현재 내가 안이한 삶을 살고 있어서다. 여태까지 안이하게 살아왔기에 계속 안이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타인의 삶을 상상하려 하지도 공감하려 하지도 배우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다. 레베카처럼 사는 사람은 소설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분명 존재하고 레베카 같은 성격의 소유자만이 감당할 수 있는 삶도 아니다. '하느님은 감당할 수 있는 고통만 주신다' 는 말은 개인차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같은 고통이 갈 수 있다는 말로 해석해야 한다. 즉, 레베카의 삶은 누구나 감당할 수 있는 삶이다. 물론 가급적 있어서는 안될 부당한 삶이지만, 레베카에게만 점지해서 내려지는 삶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걸 레베카가 증명한다. 끝까지 살아남아 노환의 중병으로 죽을 때까지 그녀는 이런 삶은 인간이 이길 수 있는 삶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레베카만이 아니라 인간 모두가 견딜 수 있는 삶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 삶에 의미가 생긴다. 살아나가는 동안 삶의 의욕을 찾기는 어둠 속을 더듬는 것처럼 어려워도 끝까지 살아남으면 살아온 것만으로도 타인에게 한줄기 길을 밝혔다는 결과물을 내어준다. 힘들게 살았어도 평생 손에 남는 것 하나 없을지도 모른다. 보상다운 보상을 받지 않을지도 모른다. 왜 살아야하는지 의욕을 잃어 하루하루를 기어가듯 어거지로 보낸다 해도 여기서 끝내서는 안된다. 레베카 같은 이가 뚫어놓은 길을 보고 끝까지 가봐야한다. 그래야 안다. 내 삶에 무엇이 남았는지를. 왜 살아올 수 밖에 없었는지를 그때가 아니고선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살아라. 끝까지 살아라. 그런 고통이 네게 주어진 것은 네가 너와 함께 다른 수많은 사람들을 구제하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또한 부담이 되고 짐이 되겠지만 그 대신 우리는 너를 외롭게 두지 않겠다. 너같은 삶은 감당 못하느니 너같은 삶은 죽을 것 같다느니 하며 너와 나를 분리하여 너를 섬처럼 두지 않겠다. 앞서서 세찬 바람을 맞고 있는 것은 너지만, 네가 넘어지지 않게 뒤에서 받쳐주고 있는 것은 우리가 되겠다. 그렇게 하여 네가 가는 삶을 따라가리라. 그러니 끝까지 가라. 지금 그토록 상처받는 아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