葉櫻の季節に君を想うということ:: 歌野晶午

(※ 이 글에는 결정적인 스포일러는 없지만 트릭을 눈치챌 여지는 있습니다.)

서술 트릭을 즐겨쓰는 작가를 보면 가끔 치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단어를 교묘하게 바꾸거나 앞뒤 맥락없이 두루뭉술하게 묘사해놓은 뒤 결말 부분에 이르러 독자가 속았다 황망해하면 ' 나는 거짓말 한 적 없다. 그저 몇마디를 빼놓았을 뿐' 이라고 으쓱대며 앞장을 다시 뒤적여 확인하게끔 까지해서 독자를 더 분통 터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제대로 걸려 놓고선 방법이 치사했다 하면 그것 역시 치사한 독자가 되려나. 그만큼 능수능란한 서술 트릭을 만나면 매번 아는 문제를 틀린 것 같은 비굴한 마음에 잘 속여준 작가에게 감탄하기보다 분함과 안타까움에 땅을 먼저 치게 된다. 그래서인지 서술 트릭 소설은 다른 추리 소설에 비해 두번 읽기가 쉽지 않다. 추리 소설 속성이 한번 보면 '알고 보는' 것이기 때문에 재미가 반감될 수 밖에 없지만, 서술 트릭의 경우는 그 '알고 보는' 것 때문에 처음 읽었을 때의 재미를 반도 회수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술 트릭 추리 소설은 수명이 길다. 한 사람의 책장에만 있는 게 아니라 입소문을 타고 다른 이의 책장으로 건너건너가는 파급력이 그 어느 소설 장르보다 강한데, 아마도 그 이유는 그 한번 읽었을 때의 '강렬함' 에 있지 않을까.

그렇게 '소문' 을 듣고 손에 잡은 책이라 아무런 정보없이 읽는 책보다 훨씬 기합이 들어갔음은 당연지사. 추천해준 이마다 '정말 놀라운, 고정관념을 깨는 반전' 이라 말해주었기에 나는 어디 그 벽을 넘어보리라, 라는 투지에 불타올랐다. 게다가 이 책과 더불어 인상적인 반전 소설로 손꼽히는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 의 서술 트릭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무사히 통과한 터라 이번에도 자신있다는 오만함이 넘쳐 흘렀다. 결과를 얘기하자면, 완전히 걸려들어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다. 그 투지와 오만이 오히려 독이 되어 불필요한 곳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상식이라 여긴 '고정 관념' 적인 부분에서는 안이하게 넘어갔던 것이다. 서술 트릭의 '고정 관념의 허를 찌른다' 는 슬로건을 다시 한번 망각해버렸다. 더우기 그 밝혀진 트릭이 [살육에 이르는 병] 에서 자신만만하게 넘었던 트릭이라 허탈함이 더 컸다. 차라리 처음부터 겸손하게 마음을 비우고 읽었더라면 감탄만 있었을 뿐 자기혐오는 없었을텐데.

분함과 안타까움이 하루 지나 한풀 식고나니 나도 이 책을 먼저 읽은 이들과 마음이 같아진다. 꼭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어지는거다. '너도 한번 당해보라' 하는 심술 반, '정말 최고의 반전이예요' 하는 열광 반이랄까. 게다가 다른 서술 트릭 소설에 비해 이 소설은 전달하는 메시지로 인해 여운이 깊다. 요약하자면 [그래, 인생은 60부터 시작이다] 라고 할 수 있는, 노년의 당당함에 언젠가 그 길로 가야하는 사람으로서 투지나 희망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이 메시지가 가슴에 와닿고나면 추리 소설 제목으로는 안어울릴 것 같은 고풍스러운 제목도 수긍이 간다. 그리고 또 한번 감탄을 한다. 기법면으로도 훌륭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더 멋지구나! 하고. 그 감탄 사이로 어느샌가 속았다는 분함이나 안타까움이 즐거움과 설레임으로 바뀌어져 있으니 참 기특한 책이 아닐 수 없다. 도리어 작가의 책이 왜 이것밖에 번역되지 못했나 하는 아쉬운 소리가 나올 지경이다. 이 소설이 가장 큰 호평을 받긴 했어도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를 연상시키는 [집 시리즈] 를 발표하여 독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고 그 외에도 발표한 소설들이 많다. 아직 일본 미스터리에 대한 열기가 지속되고 있으니 모쪼록 이 기회에 우타노 쇼고의 작품이 더 많이 소개 되었으면 좋겠다.

인생을 축구 경기에 비유하자면 풀타임 90분 중 아직 전반전도 끝내지 못한 나이인데도 가끔씩 해볼 건 다 해봤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많은 것을 해와서가 아니라 무언가 하고 싶다는 의욕을 어느 순간 잃는달까. 무엇을 하려한들 시작부터 권태감을 느끼고마니 이러다 사십 되고 오십 되면 그 무기력과 우울을 어떻게 견디려나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하고 싶은 것이 그닥 없고 일상이 단조로우면 일단 몸과 마음은 편하지만 그 대신 변화가 없으니 즐겁고 재미있는 일도 별로 없다. 반대로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몸을 움직여야 하거나 마음 고생의 관문을 어느 정도 각오해야 한다. 항상 목표한 만큼 성취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이 되었든 반드시 손에 쥐는 것은 있다. 남은 인생, 어느 쪽을 선택하면서 살아가야할까. 지금의 나는 그 두가지 길의 중간선에 타협을 한 상태인 것 같다. 부귀나 명예, 사회와 타인의 인정을 바랄만큼의 목표나 꿈은 없지만 매일 무엇이 되었든 꾸준히 하자고 다짐해두었다. 그 노력과 성실이 꼭 어떤 결과로 나타나기를 바라지는 않아도 적어도 잃는 것은 없을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언젠가, 후반전을 뛸 무렵 가슴 설레게 할 새로운 꿈이 언제라도 나타날거라 느긋하게 기다리며 살아가고 싶다.

그렇다고 '이런걸 하면 좋겠다' '이런걸 하고 싶다' 며 생각만 하고 시간을 보내고 싶진 않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분명한 목표가 생겼을 때 지금보다 더 기민하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지혜가 함께 성장했으면 좋겠다. 가령 프랑스 파리에 여행 가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고 해보자. 지금 당장 그럴 환경도 경제적 여유도 안된다 하여 언젠가언젠가 타령만 한다면 그 꿈은 계속 나와 좁혀지지 않는 거리를 유지하게 되지 않을까? 단돈 얼마라도 꾸준히 저축하고 불어 몇마디씩 매일 외워 나가다보면 조금이나마 그 꿈을 향해 걸어 나가게 되는 게 아닐까? 인생은 또한, 늘 예측 불가라 전혀 예상치 못한 때에 갑자기 길이 열리기도 한다. 그걸 신앙처럼 믿는 나는, 형편없는 약골 체력에도 '언젠가' 의 히말라야 트랙킹을 꿈꾸고, 그것을 위해 매일 조금조금씩 운동을 한다. 그게 꼭 젊은 시절이 아니라한들 어떠하리. 살아만 있다면, 살려고 하는 의지만 있다면 죽는 그 순간까지 못할 것이 없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