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시간 밤길은 공기가 맑았다. 가슴 한가득 차가운 공기를 들이쉬었다. 몸에 남아 있는 열기가 날아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택시에 올라, 나는 말했다. 무언가를 치유하는 주문처럼.“시모키타자와로 가 주세요.”지금 나의 고향, 지켜야 할 것이 있고, 돌아가야 할 곳의 이름.사람 사는 거리란, 그런 거다.몇 년 전에는 전혀 몰랐던 사람들의 삶이 이 거리를 숨 쉬듯 들고 나는 것을....

 

나는 느꼈다. 혼자가 아니었다. 내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들고 나면서 거리는 만들어진다.후지코 씨의 말대로다. 언뜻 보면 뒤죽박죽 혼란스럽고 추하지만, 어느 틈엔가 멋진 무늬를 그리고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원했을 단순한 소망을 나 또한 품었다.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밀려난 것들, 마음만 놓아두고 이곳을 떠난 것들이 남긴 상념의 잔해가 데굴데굴 나뒹구는

 

기억의 전쟁터에 꽃을 바치듯 하루하루 발자국을 새기며 걸어간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이 작품은 다른 소설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을 주는 책이다. 또 다른 풍경을 자아내는 작가의 의도된 모습들은 우리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된다. 젊음의 싱그러운 냄새가 나는 시모키타자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소중한 가족의 죽음이라는 상처를 딛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이사해 온 주인공 요시에는 그곳에서 저마다의 이야기를 안고 있는 이웃들을 만나고, 계절의 흐름과 함께 아픔을 조금씩 잊어 가고, 새로운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을 떠나보내고,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하며 거리와 함께 성장해 간다. 언제나 새로운 매일이 시작되는 동네 시모키타자와 상처와 아픔, 기쁨과 희망.

 

그 모든 감정이 스민, 작고 빛나는 마음의 지도 이 거리에서, 나는 점점 솔직해져 간다 사람과 거리가 함께 그려 가는 따스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꿈에도 상상 못 했던 충격적인 소식과 함께 아빠는 영원히 가족의 곁을 떠나고 만다. 엄마와 요시에는 모르는 친척 여자와의 동반 자살. 많은 사연이 밝혀지고 그보다 더 많은 질문이 생겼으나 아빠가 없으면 어떤 답도 무의미할 뿐이다.

 

그렇게 남은 엄마와 요시에는 아빠와 함께 살던 메구로의 집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 중견 록 밴드의 키보드 주자인 아빠는 다정하고 약속을 잘 지키고 가족에게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런 아빠가 언제까지나 옆에 있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마음속 어둠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생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나 홀로 시모키타자와의 낡은 이층집으로 이사 한 요시에. 골목골목마다 신기한 가게와 재미있는 이야기가

 

살아 있는, 생기 넘치는 그 거리에서 새로운 일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겨우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살아가는 즐거움을 되찾을 무렵, 요시에의 작은 하숙방에 외로움을 참지 못한 엄마까지 찾아와 복닥복닥한 공동생활이 시작된다. 예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진 엄마의 모습, 일하는 가게에 찾아온 신야 씨와의 두근거리는 관계, 시모키타자와 거리 곳곳에서 만나는 친근해진 얼굴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중한 매일을 살아간다는 것의 기쁨. 그런 요시에 에게 아빠의 죽음을 둘러싸고 결코 알고 싶지 않았던 비밀이 하나둘, 뒤늦게 도착한 엽서처럼 찾아오고 이 거리에서 조금 더 강해지고 튼튼해진 요시에는 평생 피하려고 마음먹었던 그 아픈 추억을 하나씩 찾아가며 진정한 재생을 꿈꾼다. 아빠의 밴드 동료 야마자키 아저씨와 감추어진 이야기를 추적하며, 베일이 하나씩 벗겨질 때마다 자신을 영원히 속박하리라

 

생각했던 어둠에서 조금씩 해방되는 요시에. 한편 새로운 마음의 고향 시모키타자와에서 시작된 사랑과 그 사랑의 끝,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을 겪으며 요시에는 점차 어른이 되어 가는데,거리와 사람이 함께 만들어 가는 만화경처럼 다채로운 삶의 지도, 우리의 일상을 따스한 빛으로 물들이는 아주 친밀한 이야기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이 주는 묘미는 이 소설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요시모토바나나, 안녕시모키타자와, 김난주,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