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연애소설보다는 기행문이나 여행기를 좋아하게 된다.노래도 복잡하고 빠른 것 보다는 발라드나 느린 것을 좋아하게 된다."암자로 가는길"은 나의 정서와 합하는 좋은 책이다.저자는"나그네"라고 하지만 우리 모두가 나그네이다.인생의 여정에서 여행이란 참좋은 것이다.그런데 암자만 찾아다니는 저자의 모습에서 고립된 인간의 해방을 찾아본다.

 

 

이 책은 수행자들의 거처를 기행 취재하여 그곳의 정보와 사실을 소개하면서 동시에 구도(求道)의 길을 천착하는 기행 산문집의 초석을 닦았다고 할 수 있는 중요한 산문집이다. 이 땅의 수행처들을 찾아다니며 깊이 있는 명상적 산문을 집필해 온 정찬주의 이후 작품 세계 또한 이 책들로부터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다. 발품을 많이 판 책이다.

 

 

해탈을 하고 싶은 본연의 모습은 중생의 탈을 쓰고 살아가기에 자연에 순응해야만 하는 진리를 배운다.인간의 번뇌가108가지라고 하지않던가! 책에서 저자는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별로 일반 독자가 찾기 좋은 암자 서른두 곳을 소개하고있다.10여 년 동안의 암자순례를 통해 네 권의 암자 관련 책을 낸 바 있는 저자에게 이 책은 암자순례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결국 인간이 소유를 한다는 것은 우둔한 일이다.자연을 거스리는 일은 피하는 것이 좋다.암자는 인간세상을 피하는 도피처가 아니라,자신을 되찾아보는 깊은 수도처이다.해가 가장 빨리 뜨는 암자,무소유를 화두로 주는 암자,만개의 햇살이 따사로운 암자등 곳곳마다 가지고 있는 특징을 소개하고,저자와 사진작가가 함께 찍은 풍부한 화보로 각 암자의 독특한 느낌을 전달한다.

 

 

이 책은 암자를 물리적 속성을 지닌 특정한 공간으로만 파악하지 않는다. 암자의 내력과 그 암자를 거쳐간 수많은 수행자들의 숨결을 보듬는데, 그 안에 역사가 있고 삶이 있고 사람이 있다.인도의 바라문들은 자식을 다 키우고 난 후 숲 속으로 들어가 사는 임간기(林間期)라는 전통을 지키고 살았는데,작가 자신도 그런 셈이라고.“그런 생을 식영(息影)의 삶이라는 말로 좀 더 은유적으로 표현한 철학자도 있다.

 

 

식영을 직역하면"그림자가 쉰다"라는 정도이겠으나 숲 속에서는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니 무위자연(無爲自然)이란 의미와 통하지 않을 수 없다.쉬운 말로 자연을 벗 삼아 사는 삶이다.”작가는 그런 믿음으로 솔바람 잦은 산골로 들어왔다고 말한다.작가는 우리나라 최고의"암자 전문가"로 불린다.그는 십여 년 동안 매주 혹은 매달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암자를 찾아다녔다.  

 

 

봄을 찾아 떠나는 암자에서 나그네는 무엇을 보았으며 여름과 가을의 호젓한 풍경의 소리는 자아성찰의 해법을 담고있다.수려한 산세보다는 은둔의 미학을 가미한 이름없는 사찰에서 고승들은 어떤 해탈의 곷을 피웠을까!김천 천닥산 삼성암에서 나주 덕룡산 문성암 눈에 파묻히어 묵언 중인 산골짜기까지 나그네는 무엇을 보았을까!이 책은 자아를 돌아보게 하는 묘한 신비를 준다.

 

 

어쩌면 우리가 영면으로 가는 길에 보여지는 실상이 암자라 한다면 그곳에서 하룻밥을 묵어가는 나그네의 심정으로 이 책을 읽는다.훗날 나의 삶을 조명하여 보면 무엇이 남아 있을까!결국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간이다.하룻밤 같은 세상에서 우리는 아웅다웅 살아간다.작가의 표현이 무척이나 시적이고,복잡한게 싫어서 자연으로 들어간 그의 심정을 이해한다.암자로 가는길에서 나그네는 우리를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