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깊은 구절
작가나 화가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특히 종교적인 이야기를 전할 때는 커다란 이야기 보물 창고에서 이야기를 선택한다. 특히 그림으로 표현해야 하는 화가는 이야기의 한 부분을 골라내야 한다. 한 장명으로 전체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베르메르의 이야기에 목말라하는 나에게 이 책은 날 더 깊은 세계로 끌고 가긴 했지만 나의 목을 축여주기에는 부족하기만 했다. 베르메르에 관한 책ㅇ르 읽을 수록 느끼는 거지만 많은 이들이 베르메르를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미끼로 쓴다는 거다. 책 제목에 베르메르가 들어가 있기에 짚었 것만 이 책에서 베르메르에 관한 이야기 보다는 저자가 풀고 싶은 역사 이야기가 더 많았다. 정작 베르메르에 관한 이야기는 이 책의 1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이 책의 진짜 제목은 소제목으로 적힌 '베르메르의 그림을 통해 본 17세기 동서문명교류사'가 더 정확했다. '베르메르의 모자'란 제목은 단편집에서 끌어내 붙인 책제목처럼 하나의 작은 소재 중 하나에 불과했다. 

덕분에 난 베르메르에서 델프트로 네덜란드로 그리고 세계의 무역 시장으로 시선을 옮기게 되었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아는만큼 보인다'는 거였다. 기대와 달라서 조금 툴툴거리기는 했지만 이 책이 그림을 통해 보여준 세계의 흐름 덕분에 그림 속에 숨겨진 세계의 역사를 읽을 수 있었다. 

베르메르의 <델프트의 풍경>에 있는 여러 배들과 건물은 네덜란드 무역의 중심이었고, <장교와 웃는 소녀>에서 장교가 쓴 모자는 캐나다에서 포획한 비버의 가죽 펠트로 만든 것이었으며,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젊은 여인>에 장식된 카펫은 터키산이었고 접시는 중국산 자기였다. 또 베르메르의 <지리학자>에서 보여지는 둥근 지구본과 펼쳐진 여러 지도는 세계로 나가는 안내서였고, <저울을 든 여인>에 있는 은화는 세계 경제의 중심에 있던 은 중 하나였다.

이 책은 그림을 통해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찾아주었고, 그것은 베르메르와 그의 그림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이런 관심을 중고등학교 때 가졌었다면 얼마나 좋았을지.. 중고등학교때 배웠던 세계사가 머리 속에서 맴맴 돌기만 한다. 그나마 그때 주워들었던 게 있어서 이해하기가 쉬웠지만.. 세계의 역사는 따로따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이렇게 서로 연결되어 일어나는 것임을 좀더 일찍 이해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단순히 암기식 공부가 아닌 이렇게 서로의 연관 관계를 이해하면서 세계의 역사를 깨우칠 수 있었다면 말이다. 그저 베르메르에 관심히 있던 내가 네덜란드를 알고 싶어하고 세계 역사를 더 알고 싶어하는 이런 마음을 지금 막 세계 역사를 배우는 아이들에게도 심어 줄 수 있다면 좋겠다. 

한 화가의 예술서이기에 앞서 17세기 세계 무역 역사인 <베르메르의 모자> 일반 학생들에게 더 권하고 싶다. 



- 연필과 지우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