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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홀로 집에서 읽게 된 책<신기루>. 이 책은 자식과 부모, 딸과 엄마의 관계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들은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었다. 아들과 딸을 둘 다 키우는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아들과 딸의 사춘기 증상이 완전 다르다는 것이다. 반항적이 되고, 혼자 있고 싶어 하고, 간섭받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둘 다 똑같다. 하지만 아들은 엄마와 아무런 이야기를 나누려 하지 않으려 해서 집에서는 대화가 단절될 뿐인데, 밖에서 거칠게 행동을 하며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딸은 밖에서는 상냥하게 잘 하면서 엄마한테만 짜증을 내고 날카롭게 굴며 엄마 속을 들들 볶는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나도 사춘기 때 밖에서는 어른들한테 손가락질 받을 행동은 하지 않았다. 단지 집에만 오면 별일 아닌 일에도 엄마한테 짜증을 내곤 했다. 책<신기루>에 나오는 딸 다인이도 그랬고, 엄마 숙희도 딸이었을 때 역시 그랬다. 왜 세상의 모든 딸들은 엄마한테 못된 짜증을 부리는 것일까. 오히려 다른 누구한테보다 더 잘 해야 할 자신의 엄마에게 말이다. 나에게 딸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동안 딸과 엄마라는 단어가 주었던 친근함이 갑자기 확 사라지는 것 같았다.

왜? 대체 왜 그럴까... 오랜 질문 끝에 내가 찾은 답은 서로 너무 닮아서였다. 연인관계나 부부관계에 있어서도, 성격이 비슷하면 더 잘 싸운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딸과 엄마는 같은 성별을 갖고 있는데다가 딸과 엄마는 서로가 서로를 너무 닮았으니까. 엄마는 딸에게서 자신이 싫어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딸은 엄마에게서 자신이 닮기 싫은 닮은 모습을 보게 되면서 말이다. 어쩜 딸과 엄마 모두 자기 자신에게 짜증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닐련지.

딸과 엄마의 목소리로 채워진 몽골의 고비사막 여행 이야기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딸의 눈으로 보는 일행의 모습과 엄마의 눈으로 보는 일행의 모습이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엄마, 숙희의 눈으로 보는 일행은 어른들의 복잡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좋아하는 친구들이지만, 같이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닐 때와는 너무나 달라진 상황과 환경에 따른 미묘한 감정들. 학생일 때는 성적과 외모가 인기의 척도였다면, 결혼한 뒤엔 남편과 경제력이 행복의 척도가 되었고, 자식이 생긴 뒤엔 사회적 명성과 자식의 학벌이 자랑의 척도가 되었다.

사람이 모이면 관계를 맺게 되고, 그러다 보면 서로 감정을 갖게 된다. 근데 그 감정이란 것이 복잡 미묘한 것이어서 사람 마음이란 참 알 수가 없다. 때론 부러워했다, 때론 질투하고, 때론 자랑스러워했다, 때론 시기하고, 때론 좋아했다, 때론 싫어하고.. 어른이 될수록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다양한 감정을 갖게 된다. 하지만 어른이기에 그 감정들을 결코 다 드러낼 수만은 없다. 때론 질투가 나도 그저 부러운 척, 때론 시기가 나도 자랑스러운 척, 때론 싫어해도 좋아하는 척 해야 하는 게 어른이니까.. 어쩜 나이와 함께 느는 것이 보이지 않는 가면의 두께일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말에서 ‘이미 모든 것을 소설 속에서 말했으므로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는 작가의 말을 보며, 왠지 모르게 안도감이 들었다. 실제로 문우들과 함께 몽골, 고비사막으로 여행을 다녀 온 뒤 쓰여 진 이 이야기가 그저 작가의 상상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작가도, 다른 누군가도 이렇게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갖고 살아가는 구나 싶어서 말이다. 어쩜 이 이야기는 실화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책<신기루>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 누가 작가의 모습을 담고 있을까. 보이지 않게 자녀 교육에 열을 올리며 자신의 꿈을 접어버린 숙희일까? 아니면 이미 유명 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춘희일까? 자녀들을 해외로 유학 보낸 경화일까? 떼돈을 번다는 인경일까?

나는 한숨이 나왔다. 솔직히 시 다음으로 질색인 게 산문이다. 시가 은유와 상징으로 불친절하다면 산문은 할머니의 잔소리처럼 읽기도 전에 지루하게 만들었다. 특히 여행 산문집은 제목에 혹해서 몇 권 읽어 봤는데 기껏 여행 가 놓고서는 풍경 대신 진정한 자기 자신과 만났느니, 어쩌느니 엉뚱한 이야기만 하기 일쑤였다.

- <신기루> p87 중에서 -

“모래 언덕에서 봤을 때는 처음 보는 거라 신기하기만 했고, 길 잃어버렸을 때 신기루를 두 번 봤잖아. 그때마다 진짜 호순 줄 알고 막 좋아했다가 아니라서 엄청 실망했잖아. 그래서 처음에는 없는데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속임수 같아서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데 진짜 호수를 만나고 길도 찾고 나니까 만약에 그때까지 신기루를 한 번도 못 봤으면 어떻게 불안하고 무서운 걸 참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 <신기루> p201 중에서 -

- 연필과 지우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