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 깊은 구절

화가에게는 삶을 자연에 맞게 모방행 하는 과제가 있네. 이 과제는 차갑고 따뜻한 색조에 차이를 둠으로써 가장 잘 달성할 수 있어. 실제로도 그런 것처럼 말야. 이때 중요한 사물을 빛 속에 놓고 중요하지 않은 것을 어둠 속에 둠으로써 관찰자의 시선을 유도할 수 있네." 

"상이한 재료들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리려면 물감도 다르게 만들어야 해. 그래야만 가장 좋은 느낌을 얻을 수 있거든. 부드러운 소재를 묘사하려면, 바탕이 아직 축축할 때 밝고 엷게 칠해야 해. 반대로 딱딱한 소재는 두껍게 색칠해야 신빙성을 얻을 수 있어." 

"방금 그림의 대단히 중요한 기초를 파악했네. 빛과 그림자, 밝음과 어두움. 이것이 그림을 이루는 요소야. 제대로 사용하면 그림의 구성에 극적인 효과와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어." 

"사물을 가까이 관찰하면.. 눈이 하나의 거점을 찾게 되지. 눈은 울퉁불퉁한 곳에 고정될 걸세. 이와 반대로 멀리 보게 되면, 형태들이 매끄럽고 균일하게 보이는 법이라네. 그래서 앞쪽 사물들은 불규칙적인 붓질로 묘사해야 하고, 배경에 있는 사물들은 매끄럽게 칠해야 하는 거라네." 

"내 미래를 꽃의 구근에 거느니, 차라리 열심히 노력하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해서 언젠가 유능한 화가가 되겠어요."

"비밀은 없어. 그림을 그리는 것은 수공업이야. 화가가 필요로 하는 것은 훈련된 눈과 노련한 손이 전부하네." 

"지금이야 교수를 중요한 인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앞으로는 그리 오랫동안 훌륭한 인물로 남지 못할거야. 명성을 남기려면 인격과 겸손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해. 그런데 눈을 씻고 봐도 교수에게서 이런 품성 중 어느 것도 발견할 수가 없구나." 

"감톤 좀 그만 하게. 수년 간 그저 수공업적으로 반복하는 일일 뿐이야. 물론 화가가 되려면 전제조건이 있어. 두가지 미덕을 갖고 있어야 하지. 바로 끈기와 인내라네." 

"묘사하고 싶은 사물을 더 오래 정확하게 관찰할수록, 눈이 더 민감하고 예민혜지네. 화가가 될 때까지 부단히 연습해야 해. 눈과 손이 화가 본래의 도구거든. 다른 수공업에 적용되는 말이 회화에서도 그대로 통해. 도구가 좋으면 좋을수록 작품은 그만큼 좋아지는 법이라네."

- <렘브란트 마지막 그림의 비밀> 중에서 -

오랜만에 찾은 생동감 넘치는 미술 소설이었다. 게다가 최대한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써내려간 작가의 노력이 있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동안 던져 버리고 싶었던 역사서들을 굿굿하게 읽은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이 책은 예술가 치고는 길었던 렘브란트의 60여년의 일생 중 죽기 전 몇년의 이야기만 담겨 있었지만, 그가 그림 그리는 과정을 좀더 가까이 느끼게 해주었다.

특히 그림을 이루는 요소로 말한 "빛과 그림자, 밝음과 어두움"은 유독 내 머리에 깊이 각인되었고, 이후 그림을 볼 때 보게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이 책을 읽은 후 전시장에서 보게 된 니콜라스 마에스가 그린 <아도니스 의상의 소년 초상>는 나에게 큰 감명을 주었는데, 그 그림 속의 아이는 너무나 입체적으로 보였고, 금방이라도 그림 속에서 걸어나올 것만 같았다. 꽤 큰 전시장이었는데도 다른 유명작보다도 난 그 작품 앞에서 쉽게 발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렘브란트가 말한 "빛과 그림자, 밝음과 어두움"은 꽤 오랫동안 내 가슴 속에 세겨지게 되었다. 내가 그의 말을 가슴에 세긴 뒤 실제로 본 게 그의 그림이 아니란 것이 조금 아쉽지만.

<니콜라스 마에스의 아도니스 의상의 소년 초상>

책 제목 그래도 렘브란트가 죽기 직전에 그렸을 그의 마지막 그림에 관한 이야기는 그 그림의 중요도를 떠나 그동안 그저 너무나 당연하게 보았던 것들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끔 만들어주었다. 유명화가에 의해 그려진 유명한 인물화들. 그 그림 속 인물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사란 당시에도 대단한 직업이긴 했지만, 책 속의 이야기처럼 존경받을 만한 의사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자신이 해부하는 모습을 그림에 담아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뿐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었다. 

또 그림 속에 또 다른 주인공인 해부 시신.. 요즘처럼 죽어서도 자신의 몸을 기증하는 일은 흔치 않을 것 같긴 했지만. 난 그저 진짜 시신을 갖고 해부 연습을 했구나 하고만 여겼었다. 그렇지만 처형당한 사람들만을 해부용 시신으로 사용했다는 것과 그 때문에 일부러 작은 죄목의 사람을 처형시켰을 수도 있다는 건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난 바로 렘브란트의 마지막 그림은 아니자만 그가 그린 해부학 강의 그림을 찾아 보았다. 이 그림 속의 시신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시신을 해부하는 저 의사는 어떻게 시신을 구했을까.. 예전에 이런 이야기는 들었었다. 사이가 안좋았던 두 의사가 자신들의 기념화로 자신의 우위를 과시했다는 이야기. 한 의사는 자신이 높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상대의사를 자신이 해부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조수의사 중 하나로 그려넣게 했고, 그걸 본 상대의사는 그 의사를 자신의 해부용 시신으로 그려넣게 했다는 이야기.. ^^;; 과연 이 그림 속의 의사와 시신.. 그리고 조수 의사들 사이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었을지 참 궁금하다. 

<렘브란트의 툴스박사의 해부학 강의> 

<렘브란트 블루>를 읽고 내내 궁금했던 사실. 렘브란트의 딸 코르넬리아가 정말 그의 제자였던 코르넬리스라는 사람이랑 결혼했냐였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건 코넬리아가 코르넬리스라는 사람이랑 결혼했다는 것. 하지만 그가 렘브란트의 제자였는지는 확실히 알려진 게 없는 듯했다. 다음에 만나 게 될 책에선 그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연필과 지우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