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절절한 이야기이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충분히 감동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짜증이 나게 하기도 한다. 너무나 일방적인 아버지의 희생에 짜증이 나고, 정말 인간같지 않게 묘사되는 어머니의 행태에 짜증이 나고, 마무리 또한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사는 결말에 다시 한번 짜증이 난다.

 

짜증이라 표현하지만, 사실은 치기어린 푸념일지도 모르겠다. 10년전 나온 소설이지만, 세대를 뛰어넘을 수 있는 공감대를 가진 이야기이다. 드라마를 전혀 보진 않지만, 백혈병이 주요 단골소재임은 익히 아는바, 이처럼 절절하게 이야기를 풀어낸 작가의 역량에 감탄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지만 아이답지 않은 어른스러움(그렇지만 타의에 의해 형성된 것 같아 안타까움을 자아내는)을 보이는 백혈병에 걸린 소년과, 시인이지만 아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끝내는 자신의 목숨까지...)한 가시고기 같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읽고 내리사랑이라 불리는 부모의 사랑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다음과 같은 아이의 고백이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무언가를 보여준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아빠뿐이고,

아빠가 사랑하는 사람도 나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언제까지나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한 건 바로 아빠예요.

그렇게 중요한 걸 왜 잊어버렸을까요.

내가 없어지면 아빠는 어떻게 될까요. 아빠 말대로 속이 시원할까요.

자꾸만 가시고기가 생각납니다. 돌 틈에 머리를 박고 죽어가는 아빠 가시고기 말예요.

내가 없어지면 아빠는 슬프고 또 슬퍼서, 정말로 아빠 가시고기처럼 될지도 몰라요.

만약 내가 엄마를 따라 프랑스로 가게 된다면요, 아빠가 쬐금만 슬퍼했으면 좋겠어요.

쬐금만 슬퍼하면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겠죠.

 

더이상의 고통스럽지만 희망이 없는 치료를 포기하고, 떠나는 한 부자를 서술하면서 다음과 같은 대목에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맙소사! 난 놀라 자빠질 지경입니다.

아빠는 나한테 무엇이든 사주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아요. 병이 나은 것이 너무 기뻐서겠죠.

아빠가 내 모자 챙을 노크하듯 가운뎃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말합니다.

"대신 아빠와 약속해야 한다. 하루에 한 권씩만 읽기로."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지만 왠지 슬퍼집니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어요. 퇴원을 하는 게 기뻤고, 아빠와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은 더욱 신났지요. 그런데 왜 벌써부터 자꾸만 슬퍼지는 걸까요?

'드래곤 볼'을 모두 읽으려면 42일이 걸릴 겁니다. 42일은 굉장히 긴 시간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계속해서 여행을 할 거구요. 그리고 42일이 흘러가기 전까지는 서울로 돌아갈 수 없겠죠. 당연히 은미를 만날 수도 없을 테구요.

우리는 서점을 나와 천천히 여관을 향해 걸어갑니다.

아까처럼 아빠의 손을 잡을 수는 없어요. 아빠의 손에는 '드래곤 볼'이 가득 담긴 쇼핑백 두 개가 들려 있기 때문이죠.

"힘들지 않니?"

"괜찮아요."

"아빠가 업어주랴?"

"내가 애긴가요, 뭐."

"아빠가 널 업어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하루라도, 아이가 더 살기를 바라며 하루에 책 한권만 읽기로 약속하고 책을 사주는 아버지의 심정을 과연 내가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다시 쓰러진 아이를 중환자실에 입원시키고, 옆의 교회에서 뱉어내는 아버지의 기도는 무어라 표현하기 어렵다. 절절하다는 말 이외에 다른 단어가 떠오르질 않는다.

 

하나님! 그래요,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당신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 아들은 당신을 알고 있습니다. 아이는 밥상 앞에서 어김없이 감사의 기도를 합니다. 잠들기 전에도 기도를 잊는 법이 없습니다. 내가 당신을 믿지 않는 게 아이에겐 크나큰 걱정거립니다. 그렇습니다. 아이의 생각을 송두리째 사로잡고 있는 당신입니다. 그것이 옳은지 어떤지 나는 모릅니다. 다만 아이의 믿음을 막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아이가 원한 바였으므로... 하지만 당신은 잔인합니다. 당신은 냉혹한 심판자입니다. 내게 남은 건 오직 아이뿐인데, 왜 그 마지막 소망마저 거둬가려 듭니까.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원하고 있습니까. 내 소망이 그리도 지나친 욕심입니까... 아시잖습니까. 지금까지 투병의 고통 속에서만 살아온 아입니다. 웃음보다는 눈물에, 기쁨보다는 슬픔에 휩싸여 이제껏 겨우겨우 견딘 가련한 아입니다. 다른 아이들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조차 포기해왔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버렸고, 아버지는 무능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고 줄곧 아이의 삶을 외면해온 당신입니다. 당신을 믿고 의지해온 아이에게 말입니다. 아이에 대한 당신의 처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부당합니다. 억울합니다... 이제, 아이의 믿음이 옳았기를 바랍니다. 공평의 하나님이길 바랍니다. 당신이 진정한 절대자였으면 합니다. 그 절대적인 힘으로 아이를 살려낼 수 있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아이를 살려주십시오. 당신을 모르고, 어쩌면 앞으로도 내내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믿음과, 아버지의 기원으로 당신에게 말합니다. 아이를 살려주십시오.. 믿음 없는 자에게 대가를 요구한다면 차라리 내 목숨을 거둬가십시오. 기꺼이 아이를 대신하겠습니다. 아이 외에는 세상에 소망 둘 곳을 잃은 자입니다. 하지만 아이는 다릅니다. 꿈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세상을 사랑합니다. 대단히 영리하고 맑은 영혼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나를 대신하십시오. 그리고 아이를 살려주십시오. 부디, 부디...

 

그리고, 아버지의 소원은 이루어진다.

가시고기, 조창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