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사마천의 '사기'는 익히 들어본 바이지만, 읽어본 적도 없고, 수박 겉핥기로도 접해본 적이 없는 책이다. 그런 책을 그나마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놓은 이 책은 왠만한 자기계발서나 성공법,처세법을 제시하는 책들보다는 훨씬 나은 책이다.

수많은 인간군상들의 행동을 기록하면서, 정답이나 견해를 확정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의문형으로 남겨놓는 사마천의 저술은 많은 사색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데, 언제 기회가 되면 사기 원본을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난다(언제가 될런지는 모르지만... 논어나 채근담 읽는 것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요약본임에도 불구하고....)

인상깊은 한 구절은 진시황릉에 대한 글인데, 이거 자체는 사기와는 별 관계는 없는 글이지만, 중국에도 본받을 만한 점이 있음을 알게 해준 글이다.

중국의 문화재 발굴법은 1970년대 이후로 바뀌지 않고 있다. 1970년대 저우언라이 수상에게 진시황릉을 발굴하자는 건의서와 탄원서가 끊임없이 올라왔다. 국가 부주석까지 지낸 역사학자이자 소설가, 시인인 궈머뤄까지 발굴하자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저우언라이는 이를 물리쳤다. 그는 과학 기술이 좀 더 완벽해질 때를 기다려 후손에게 맡기자고 했다. 그러고는 앞으로 10년 이내에 발굴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때가 1970년대 후반이었고 그것이 저우언라이의 확고한 입장이었다. 그리고 저우언라이의 당시 입장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금과옥조처럼 지켜지고 있다. 지금 발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후진국이라는 중국만도 못하다. 문화라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우리가 그리고 나아가서 세계인이 공유하는 유산이다. 발굴 하나, 보존 하나라도 제대로 해야만 공유를 위한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는 것이다. 눈앞의 성과와 개인의 명성을 위해 마구 파헤치면 어찌 되겠는가. 무녕왕릉의 발굴을 보라. 세계 발굴 역사상 최악의 발굴로 기록되고 있다.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진 정치가 한 사람이 중국의, 아니 세계인의 소중한 문화재를 지켜내는 방패가 되었고 지금도 든든한 방패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 진시황릉은 어쩌면 인간의 탐욕과 끝을 알 수 없는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방패를 보다 튼튼하게 버릴 필요성이 갈수록 절박해지는 시점이다.

이 글을 보면서 정말 그런가 싶고, 몰랐던 사실이었다. 한번 무녕왕릉이 어떻게 발굴되었는지 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하나 기억에 남는 글은 '식여도(食餘桃)'에 관한 글이다. '먹다 남은 복숭아'라는 뜻이다. 원래는 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사마천이 <노자한비열전>에서 다시 언급했다.

<사기>에는 동성연애자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동성연애자라고 드러내놓고 따로 열전을 마련한 것은 아니다. 황제나 권력자가 미소년이나 잘생긴 남자들과 관계를 가진 사실을 비판적으로 기술하는 대목에서 슬쩍슬쩍 튀어나온다.

위나라 영공은 미자하라는 미소년을 사랑하고 아꼈다. 미자하가 어느 날 정원을 거닐다 복숭아를 따서는 자기가 한 입 베어 먹고 남은 것을 영공에게 건넸다. 영공은 "자하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참으로 깊구나. 맛있는 복숭아를 혼자 다 먹지 않고 남겨주다니"하며 자하를 칭찬했다. 미자하는 또 어머니가 아프자 밤에 몰래 임금이 타는 수레를 훔쳐 타고 집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당시 법에 따르면 사형감이었다. 하지만 영공은 "참으로 효성이 지극하구나"하며 자하를 용서했다. 미색으로 얻은 사랑은 미색이 쇠퇴하면 따라서 쇠퇴하게 마련이다. 미소년이던 미자하도 나이가 들어 수염도 나고 목소리도 변해 성인이 되자 영공의 사랑도 함께 시들었다. 영공은 자하에게 '너, 이놈! 그때 내게 먹다 남은 복숭아를 줬지. 또 내 수레를 훔쳐 타고 성을 나갔다 온 적도 있지'하며 비난을 퍼부었다. 애정이 식으면 사랑도 증오로 변한다고 했던가.

인간의 마음이 사랑에서 증오로 바뀌고, 사랑이 시들면 옛날에 좋았던 것도 미워지고, 칭찬하던 것도 비난으로 바뀐다. '먹다 남은 복숭아' 이야기가 던지는 메시지기 의미심장하다.

이밖에도 인간 군상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셀 수 없이 이 책에는 많이 서술되어 있다. 간접경험이지만 참으로 다채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아닐 수 없다. 이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들의 모습은 크게 바뀐게 없다는 것도 다시 한번 느낀 점이라면 느낀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