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눈에 들어와 읽게 된 책.

 

그 우연만큼이나 다분히 판타지스러운(현실적이라고 검증되지 않은) 저승사자가 등장한다. 저승사자라는 존재를 긍정할 생각도 부정할 생각도 없지만, 한 축을 형성하는 저승사자의 의미가 무엇일지 잘 모르겠다는게 문제이다.

 

현실에서 저승사자라 불리우는 사채업자 서주찬, 원치 않는 원죄를 떠안은채 유령을 볼 수 있는 얼음공주 이정민.

 

두 주인공과 그들의 주변인들-서주찬의 사촌동생, 고모와 고모부, 이정민의 이복형들, 친어머니, 큰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주변인인 저승사자 2999호였던가-이 엮어내는 이야기이지만, 대부분의 중심은 두 주인공의 사랑만들기다.

 

혹자는 로맨틱하다고도 할 수 있고, 멋지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참 황당한 설정이라 생각한다. 한눈에 반할 수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사채로 엮어서 만남을 강요하고 또 그걸 결국에는 받아들이는게 이해되는걸 떠나서 너무나 억지스런 설정이 아닌가 싶다. 머 콩깎지가 쓰이면 뭔들 못할까 싶기도 하지만, 결국 결론은 소설이니까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는거. 작가의 글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 될 뿐 굳이 비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왜 결혼을 안 했어요?"

"아내라는 여자한테 돈 쓰는 게 아까워서."

"당신은 왜 결혼 안 하고 있지?"

"남편이라는 남자까지 챙기기 귀찮아서요."

"귀찮아?"

"네, 난 내 한 몸도 귀찮아요."

 

이 부분 읽으면서 덜컥 내려앉는 가슴. 약간은 내 입장이 반영된 글이라 갑자기 급공감이 되기 시작했다.

 

"결혼해서 알아가도록 하지."

"보통은 알아보고 결혼해요."

 

화성에서 온 남자에서나 나올법한 극단적인 관점의 차이를 보여주는 대화다. 앞뒤 내용 자르고 이 글만 써놓으니 이상하긴 하지만, 둘의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화라서 기억에 남는다.

 

책의 후반부에 딱 한번 나오는 또다른 주인공이라고도 볼 수 있는 저승사자, 사휘(斜暉). 약간은 아련한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인물이다.

 

사랑이 시간으로 정해지는 건 아니니까

오래 만났다고 해서 다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스쳐 지나갔다고 해서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야...

 

서주찬의 이 말은 가장 마음에 닿는 말이다. 근데 웃기는건, 스쳐 지나갔다고 해서 꼭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오래 만났다고 해서 꼭 사랑 안하는 것도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