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니 가오리를 처음 만나게 된건 '당신의 주말은 몇개입니까'였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야 에쿠니 가오리가 그 유명한 '냉정과 열정 사이'(정말 제목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무슨 내용인지 전혀 모른다)의 저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신의 주말은 몇개입니까'에서 '밥'이라는 말이 나오는 그 글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소소한 일상을 너무나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정말 신이 내려준 축복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그녀만의 재능에 반해버려 그녀의 다른 책을 찾아보았고 두번째로 보게 된 책이 최근작인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이다. 무겁지 않지만 가볍지도 않은 일상의 작은 소재들에서 잔잔하지만 여운이 남겨지는,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자연스레 미소를 짓게 하기도 하는 그녀만의 표현이 이 책에도 역시나 잘 살아 있다.

 

'당신의 주말은 몇개입니까'에서 보았던 '밥'정도의 전율을 느끼지는 못하였지만(아직도 '그럼 밥은?'하고 묻는 그녀의 남편이 떠오른다. 얼굴도 모르지만), 나에게도 이런 재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주변의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해서 나중에 나도 이런 에세이집을 출판용이 아닌 소장용으로 만들 수 있다면 하는 작은 소망이 생긴다.

 

어느날 문득
지님보다 지니지 않음이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을 다 들고 다닐수는 없으니까
필요한 것을 비교적 고루 들고 다닌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아무것도 없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 하는 편이 훨씬 가뿐하지 않은가

 

살다 보면 물건이든 사람이든 상처가 나잖아. 피할 수 없는 거잖아. 그보다는 지저분한 것에 신경을 쓰는 편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상처는 없앨 수 없지만, 지저분한 것은 치울 수 있으니까.
무슨 말씀! 지저분한 거야말로 피할 수 없지. 그리고 치울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 치울 수 있으니까 그냥 놔두는 거야. 하지만 상처는 피할 수 있으니까 조심하라는 거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여행 가방이 있다. 여행 가방은 만사를 알기 쉽게 인식시켜 준다. 내가 생활하는 데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잔인할 정도로 명확하게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