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른 책은 아니었지만, 그다지 많은 분량의 책은 아니었지만, 몇몇 마음에 와닿는 말로 인해 이 책을 읽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여성의 시각에서 본 결혼한 후의 일상에 대한 작가의 생각들이 열여섯 가지 주제로 펼쳐져있는 이 책을 읽다보면 왠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결혼하기 싫다는 생각도 드는 그런 책이다.

 

다음 단락이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밥

한동안 나홀로 여행을 하지 못했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갑자기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나는 이런 때는 행동이 재빠르다. 수첩을 펼치고, 스케줄을 생각하고, 9월에는 여행을 떠나자고 결심했다. 여권의 유효 기간이 끝나, 그날 산책하는 길에 사진을 찍고 구청에서 서류를 받아와 다음날 신청서를 냈다.

밤, 회사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대뜸 말을 꺼냈다.

"나, 9월에 여행할 거야."

양복과 넥타이, 와이셔츠와 양말을 여기저기 벗어던지던 남편이, 옷을 벗다말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밥은?"

이번에는 그 말을 들은 내가 어안이 벙벙했다.

밥?

몇 초 동안, 둘 다 말이 없었다. 그리고 간신히 내가 말했다.

"밥? 첫 마디가 그거야?"

지금 외출을 하는 거라면 몰라도 앞으로 몇 달 후에 여행을 간다는데, 그 말을 듣고 처음 하는 소리가 어디?가 아니고, 며칠 동안이나?도 아니고, 밥은? 이라니.

나는 나의 가장 큰 존재 가치가 밥에 있다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아 슬펐다.

하지만 이런 유의 일은 흔히 벌어진다.

 

그럼 밥은?... 간신히 내가 말했다.

그 당시의 상황을 왠지 떠올릴 수 있는 이 단어들에 절로 웃음을 짓게 되고, 하지만 글 속에 담겨있는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그런 모습들을 아무런 어려움 없이 떠올리게 해주는 글이다.

 

그리고 새로 알게 된 단어.

"Relish"

맛본다, 맛있게 먹는다의 의미의 동사... 케이크나 아이스크림을 맛보듯이 그렇게 살고 싶다고 저자는 말한다. 과연 그런 삶이 어떤건지 난 잘 모르겠지만.

부부, 결혼생활, 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