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말했다.

"혹시? 맞구나. 오랜만이야."

그녀는 공항 대기실에 앉아 누군가가 이렇게 나타나
그녀에게 마을 건네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출장 때문에 일주일 정도 파리에 갔다 와야 했다.
대부분의 출장이 그렇듯이,
시간 여유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그녀는 면세점을 구경하는 일에도 흥미가 없었고
자유시간이라고 해봐야 공항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전부가 될 것이다.
그냥 쉬고만 싶었다.
생각해보니, 지난 주말까지 하루도 쉬지 못하고
야근을 하지 않았던가.
지친 손가락은 더 길어졌고 턱밑에는 근심이 서렸다.
이렇게 피로에 지쳐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릴 때마다
그녀는 이런 상상을 한다.
'누군가가 나타나서 내 손을 잡고
아무 비행기나 타고 멀리 데려가줬으면.'
탈출구도 끝도 보이지 않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그런 모험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그만하면 모범생 생활은 오래했다.
최근 들어 그런 인생이 가진 한계를 뼛속까지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 필요한 건 영화 같은 극적인 일이다.'
라고 생각했다.
아마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그 장소가 공항이라는 탓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비행기를 타고 어느 나라에 내리든지,
자신에게는 모든 곳이 타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공항에 있을 때면, 조금 안심이 되었다.
결국 그녀는 공항에서만 자기 자신일 수 있었는데,
그 이유를 우연히 어느 책에서 발견한 적이 있었다.

'공항에서는 모두가 이방인이다'
모두 이방인인 곳에서는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조금도 불편하거나 거추장스럽지 않았다.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초로의 신사가 말을 걸었다.
"절 알아보겠습니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신사는 지팡이를 약간 들어서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지팡이 끝에는 황금빛의 올빼미가 조각되어 있었다.
그걸 보고서야 기억이 떠올랐다.
"제가 어릴 때 제 꿈에 자주 나타나셨던 분이죠?
밤마다 오늘은 만날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잠이 들곤 했었어요.
제가 사춘기를 지난 후에는 한 번도 뵌 적이 없었는데.
반가워요."
신사는 지팡이를 살살 돌렸다.
"그 사이에 세상이 많이 변했죠.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러더니 노신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릴 때는 비행기를 많이 타고 싶어 했었죠?
그때는 아가씨가 출장 다니는 사람들을 부러어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니까 꿈을 이루신 거죠."

그 말과 동시에 그녀는 눈을 번쩍 떴다.
옆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올빼미 지팡이를 가진 신사의 말이 맞았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던 영화 같은 일은 이미 일어났던 것이다.
꿈이 이뤄졌으니까.
공항의 치밀한 공기 속으로 탑승 안내 멘트가 흘렀다.
그녀는 게이트로 걸어갔다.
새로운 문이 열렸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