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릴없이 보고 들었다. 승민이 윗도리를 벗어 내던지는 것을. 한쪽 팔을 벌리고 맨가슴을 열어 보이며 포효하는 소리를.

 

"와, 다 와. 날 죽여보라고, 자식들아!"

 

등줄기로 전율이 치달았다. 이해에서 온 전율이었다. 직감이 불러온 전율이었다. 승민은 보호사나 진압 2인조에게 소리치는 게 아니었다.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자신을 조준하고 있는 세상의 총구들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내 심장을 쏘라고. 그래야만 나를 가둘 수 있을 것이라고. 직감은 불길한 예언을 내놓았다. 이놈은 스스로 죽을 거야.

 

승민과 이수명씨. 두명의 정신병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정신병동에 대한 실습을 몇번 가보았지만 수박 겉핡기마냥 보았던 병동의 이야기와는 많이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정신병동에는 개방병동과 폐쇄병동이 있는데 이 책의 배경은 폐쇄병동 중에서 병원 자체도 폐쇄된 곳의 이야기입니다. 과거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정신병이 없이 격리되었을 법한 그런 정신병동이 연상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맨정신으로 살아가는게 쉽지 않은 세상이지만 맨정신에 정신병으로 몰아부쳐져 정신병동에 감금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중에 이세상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정신병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가 생각납니다. 정신병의 정의가 무엇이냐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생각해보면 누구나 저마다의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건 쉽게 납득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두 남자의 탈출기를 보면서 그 장면을 상상하다보면 어쩔 때는 유머가 어쩔 때는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소설입니다. 모든 것이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에 약간의 추론이 필요한 이야기인데, 아마도 재산상속의 문제와 이것저것 때문에 정신병이 없을 것 같은 승민이 정신병동에 감금되어 있는 이야기를 보면, 드러나지 않게 그런 일들이 과거에도 얼마나 많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추론은 의미없지만 실제로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 느끼게 될 분노는 이 이야기의 묘사로도 부족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신병동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어요. 미쳐서 갇힌 자와 갇혀서 미쳐가는 자.

 

두번째 부류에 속하는 승민의 이야기는 재미있다고 말하기 뭐하지만 흥미로웠습니다. 작품 속에 묘사된 이야기들을 통해 일상에 대한 은유를 엿볼 수도 있지만, 그런 건 왠지 피곤합니다. 그냥 이야기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는게 편합니다.

 

작가의 필력이 상당한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전개도 상당히 빠른 편이고 시원시원하게 읽혀지는게 이런 건 타고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나 그렇게 쓸 수 있는게 아닐테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