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미술사를 정리한 책들은 많다. 
명화를 시대순으로 정리한 책들도 찾아보면 역시 많다. 
그럼에도 나는 그리 두껍지도 않은 이책을
종종 꺼내 읽는다. 
벌써 몇년째 되풀이되는 일이다. 

친구를 기다릴때, 
찻물이 끓는 것을 기다릴 때, 
문득 창밖에 비가 오고 있음을 알았을때, 
기다리는 전화가 오지 않을때, 
장꾸러미를 풀다 그냥 지칠 때, 
그럴때 나는 이 책을 꺼내 본다. 

두서도 필요없다.
그냥 손이 잡히는 대로,  
눈길이 가는 대로 멈추면 된다. 

기억하건대 
처음 이 책을 접했을때 제일 먼저 펼쳐든 페이지는 
183쪽,  바로 장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 <이삭줍는 여인들>이 그려진 쪽이었다.

일찌기 초등학교 시절의 미술 교과서에도 나왔던 그림이라 
익숙하거니도 하거니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세 명의 아낙들이 쌓여진 곡식단 옆에서 땅에 떨어져 있는 이삭을 열심히 줍고 있는 그 그림,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몰랐다.
멀리 오른쪽에 농가가 보이고, 그 앞에 말을 탄 감독자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을. 

책을 보고서야 알았다. 
그 그림은 결국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쉼없이 생산의 노동을 독려당했던 
가난한 농부와 그 아낙들의 운명을 그렸다는 것을. 

또한 그 이유로 밀레의 <이삭줍는 여인들>이 
보수적인 비평가들로부터 심한 혹평을 받았었다는 사실을.

유홍종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이후 한참을 지배하고 있는 명언이 있다.
"아는 만큼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과 전과 같지 않으리라."

그렇다.  이 책 역시 그 문구를 벗어나지 않게 만드는 좋은 책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