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낡은 바바리코트를 입은 채 
한낮의 교정을 한가로이 거닐다 
느닷없이 담배 한 개피를 입에 무는 
긴 장발의 사내를 보면 
무조건 철학과 학생이 아닐까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그랬다.
철학은 위대하기 보다는 
도피적으로 보였고,
현실에 별로 쓰일데 없는 겉멋만 가득찬 학문처럼 여겨졌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바퀴의 삶을 더 살아내고 난 지금 
문득문득 깨닫는다. 
철학이 곧 삶이며, 삶이 곧 철학이기에 
빈곤한 철학을 가진 사람이 힘을 가질 경우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엄청난 불행을.

돌아가는 정국을 보라.  
철학이 빈곤한 정부와 지도자가 
머리에 들어있는 단 한 자루의 삽을 흔들어대며 만들어가는 삶의 부조리와 불행과 그리고 치명적인 자기오류를.

그래서 사람은 ’ 철학’ 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육법전서만큼이나 두터운 책을 파헤칠 필요까지는 없다. 
그저 생각하는 사람들의 역사인 ’철학사’ 를 넘겨보는 여유만 있어도 
생각할 꺼리는 충분히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생각이 없는자, 생각없이 망할지니,
철학을 고민하지 않은 자, 철학도 없이 망하고 말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꽤 흥미로우면서도 진지한 성찰을 준다. 
격정같았던 시대를 그누구보다 깊은 성찰을 하며 살았던 
철학가 50인에 대한 추모사처럼도 보이는 이 책은
한시대를 담아낸 정신의 기록인 동시에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의 화두를 던져주는 자성의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잊고 있었던
칸트와 헤겔을 다시 만나고,
푸코와 하버마스의 위대함을 배울 수 있다. 

다이제스트북처럼 짧고 간결한 내용, 
그러나 그 내용들을 이루는 철학사의 도도한 흐름은 결코 간단치 않다. 
그 흐름에 머리와 마음을 맞대고 
같이 흐를 수 있다면 
이 책의 의미는 분명 크리라.

바라건대 
머리에 삽이 든 자, 그에게도 이 한권의 의미가 조금은 전해지길 바란다.
욕심과 자기식 합리주의보다는 
철학과 긍정적인 타협을 이끌어내는 그가 되기를 역시 희망하며.


 

클라시커50, 철학가, 위대한철학자, 인간,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