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시간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하루는 몇 시간인지, 몇시에 하루가 시작되는지 등에 대한 협의가 거의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 시간 체계가 도시마다 달랐을 뿐 아니라, 한 개인이 일상생활에서 무려 네 가지가 되는 시간체계를-목적에 따라-구별하여 사용할 수도 있었다.

-126p 시간의 측정 中에서-

 

이 책의 한 귀퉁이에 실려있는 글이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시간의 개념이

어디에서 생겨나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를 상세하게 일러준다.

사실 시간박물관이라는 공간이 실존한다면

이 책 자체가 그곳의 중요한 소장품이 될 것이 분명하다,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와 국립해양박물관이 새로운 밀레니엄을 기념하며

인류문명가운데 시간이라는 부분만을 따로 떼어내어 집대성한 이 책은

움베르트 에코와 에른스트 곰브리치 경 등 세계의 석학으로 불리는 이들이

저자로 참여한 책이다.

 

시간에 대한 탐색과 철학적 고민을 함게 담아내다보니

책은 상당히 철학적이기도 하고

또한 서사적이며 또한 서정적이다.

 

이 책의 성격을 가장 명확하게 일러주는

나침반같은 글이 있으니 바로 움베르트 에코가 쓴 서문이다.

그중 한토막을 옮겨본다.

 

시간은 우리보다 앞서가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를 뒤따라오고 있는가?

이 질문은 언뜻 실없게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과거와 미래를 공간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 해도,

미래는 우리가 지금 있는 곳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조만간 가게될 ‘곳’ 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금 있는 곳에서

과거가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과거에서 떠나간다는 식으로 말해야 한다.

 

그렇다. 사실 우리가 사고하고 행동하는 모든 기본반경에는

어김없이 시간의 규칙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시간을 자유롭게 통제하거나

혹은 마음대로 생성시키거나 소멸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시간은

인류문명의 흥망을 쥔 사실상의 결정자로

우리에게 도도히 군림하고 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시간의 통제는 불가능할지라도

적어도 시간을 재창조해내고 규범속에서 조정하는 일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인류문명의 역사역시 되짚어본다면

시간을 어떻게 유용하게 창조해 삶으로 이끌어내느냐의

역사가 아니었나 싶다.

 

가령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은 환자들을 살려내기 위한

의료진의 노력역시 실은

환자의 남은 미래수명을 좀더 늘리고자 하는 시간연장의 행위다.,

즉 시간을 거스르려는 반운명적 행위인 동시에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의 양을 좀 더 확보하려는 시간창조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 방법 역시 기도나 기원같은 계량화되지 않은 방법을 떠나

철저히 통제되고 제어되는 약물 혹은 수술기법에 의해 이루어진다.

운동, 체육, 노동의 유연성, 스트레스, 문화생활을 통한 삶의 질 개선 등등 모든 것이

따지고 보면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을 좀 더 늘리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시간을 둘러싼 인간들의 기대치와

문화사적 의미들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이 될 것 같다.

 

어쩌면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의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그 답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될 지도 모른다,

 

시간박물관, 푸른숲, 김석희, 움베르트에코, 그리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