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이 책을 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여행관련 에세이일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도 그럴듯이 표지도 외국 어딘가에서 찍은 듯한 사진에 제목에도 '여행'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니 말이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그저 작가가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면서 느꼈던 점들을 일기쓰듯이, 말 그대로 '산문집'으로 써내려간 것이었다.

물론 1부에서는 여행에 가서 겪었던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한참 여행 얘기하다가도, 그림이나 문학, 시 등 샛길로 빠져서 그것들에 대한 정보들을 쏟아낸다.

정말 여자들이 수다떠는 것처럼 이 얘기했다가 그 얘기에 나온 한 단어로 다른 얘기로 옮겨갔다가, 또 그 얘기를 토대로 또 다른 얘기를 하는 식의 끝없는 수다같은 책이었다.

그런데 조금은 지나치게 개인적인 것들까지, 또 조금은 자랑질같은 내용들로 거슬리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냥 무난하게 읽어내려갈만 한데도 잊을만 하면 거슬리는 말들을 쏟아내어, 여행에 관한 설레임과 기대감을 느끼고자 했던 나를 좀 우울하게 만들기도 했다.

 

예전 최영미의 '시대의 우울'이라는 여행 에세이를 봤을 때도 느꼈지만 작가는 무척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같다.

이 책에서도 그녀의 가슴깊은 내면에서 느껴지는 고독감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녀가 글쓰기를 고통스럽게 해내고 있다면 독자들 또한 그녀의 글을 즐겁게 읽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녀의 직업이 작가인데도 글을 쓰는 작업 자체를 귀찮아하고 싫어하는 것 같은 어투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얘기를 썼나 싶기도 하고, 단지 작가가 너무 힘들게 사는 사람이니 이해해달라는 식의 글밖에는 안되는 것 같아서, 아무리 유명한 작가라 하더라도 찾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단지 그나마 마음에 들었던 것이라면 책 속의 사진들이다.

누군가에게는 매일 보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공간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감동적이고 새로운 공간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사진으로 표현해냈다.

나는 책을 고르는 점에서는 단순한 편이다.

내가 필요로 해서 읽는 책이 아니라면, 즐거운 것이 좋다.

슬프고 우울한 이야기를 하여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의 책이라 할지라도 그 책이 가진 숨은 의미와 가치만 읽을 수 있다면, 그 책은 나에게 즐거운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나에게 즐거운 책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