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시절, 나의 장래희망은 PD가 되는 것이었다. 어떤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어디서 주워들은 PD의 말뜻을 외우고, 도서관 책장에서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를 보면 가슴이 떨리는 그런 때가 있었다. 그 때만 해도 용돈도 부족하고 시간도 없는 학생 신분으로 향유할 수 있는 문화생활이라고는 TV가 고작이었고, 그 중에서도 세계를 누비며 사건을 취재하고 독특한 풍습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PD들이 얼마나 멋져보였는지 모른다.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의 성장은 개인들에게 자발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무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 이것은 개인들에게 커뮤니케이션 무기가 제공되면서 이제껏 외부에 양도했던 개인의 자유,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던 개인의 자아가 꿈틀대기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pp.73 꿈의 공간이 확장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꿈의 성장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내일의 방송이 실천되고 있는 공간에서 방송인이라는 우리의 꿈을 성장시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 다만 이것 하나만은 명심하길 바랍니다. 이제는 KBS, MBC 방송사 입성만이 유일한 꿈이 될 수는 없는 시대가 왔고, 그렇기 때문에 방송인이 되겠다는 나의 꿈을 좀 더 통 크게 가져갈 필요는 있다고. (p.108 꿈의 공간이 확장되고 있다)

 

    

<나는 미디어다. 꿈이 꿈을 응원하는 방송 HBS>는 방송현장의 소리와 미래를 담은 책이다. 저자 오형원은 고등학교 시절 학교 방송반(HBS)에 들어간 것을 계기로 신문방송학과에 진학, PD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온 인물이다. 2005년 염원하던 KBS에 입사하여 편성본부 연구원으로 일했지만 비정규직 계약이 만료되면서 해고를 당했고, 지금은 내일의 미디어를 꿈꾸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앞부분에서는 뉴미디어를 활용하는 내일의 방송들이 소개 된다. 공동체 라디오, 개인 방송, 블로그 미디어 등 이미 친숙해진 용어들이 눈에 띄었다. 공동체 라디오의 경우 특정 계층이나 집단이 아닌 일반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매체라는 점에서 뉴미디어의 가능성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뒷부분은 기존 미디어인 공중파 방송사의 실상(!)에 대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드라마국, 예능국, 라디오국 등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고, 잘 알려진 방송인들의 사례가 다수 나와서 좋았다. 김태호 PD, 고민정 아나운서 등 내가 TV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과 태도로 방송을 만드는지 알게 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달까.

    

 

내 삶의 김태호와 <무한도전>에서 일하는 김태호가 항상 대립을 하지만 결과는 항상 일하는 김태호 위주로 돌아가니까. 밤샘 작업하면 야근 수당은 나오지만, 그 돈은 나중에 병원 갈 돈이라서, 받아서 행복하지도 않다. (MBC 김태호 PD) (p.152 즐거운 상상, 치열한 실험, 내일의 변신을 꿈꾸는 예능국)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읽었지만 저자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이는 책의 구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내일의 미디어에 대한 얘기를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반해 뒷부분의 기존 미디어 사례가 훨씬 다채롭고 생생해서,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꿈과 열정을 잃지 않는 기존 방송인들의 모습이 더욱 부각된 감이 없지 않았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새로운 미디어의 가능성을 분명하게 인식할까, 아니면 기존 방송사에 대한 매력을 더 느낄까. 나는 분명히 답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