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믿음들은 항상 유동적이지요. 그러므로 내가 믿는 것들보다는 내가 믿지 않는 것들을 열거하는 게 훨씬 더 쉬울 겁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내가 이 세상의 문제들을 독점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 역시 그들의 몫을 갖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 몫들은 대개 내 몫보다 훨씬, 훨씬 더 크지요. 이런 깨달음 덕에 나는 내가 가진 문제들을 더욱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p.22)

정보들은 이제 그날의 사건이 아니라 사건이 발생한 바로 그 순간에 초점을 맞추며 점점 더 빨리 양산되고 있습니다. 한 시간 전에 일어난 사건은 이미 뉴스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린 '과거의 사건'이 되어버리곤 하지요. ... <내가 믿는 이것>은 그것과는 다른 방향을 추구합니다. <내가 믿는 이것>은 방금 전에 일어난 일들이 아니라 평생을 바쳐야 겨우 알 수 있는 일들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p.25)

 

언론학 시간에 에드워드 R. 머로는 매카시즘을 몰아내는 데 큰 공을 세운 미국의 방송 저널리스트라고 배웠다. 1951년 <This I believe>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한 그는 사회 각층의 사람들이 직접 쓴 에세이를 선별해 낭송하여 전쟁 후 냉전과 매카시즘 광풍으로 혼란스러운 사회를 살고 있던 미국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라디오 쇼>는 1952년 초판과 2000년에 개정된 <This I believe>의 에세이집을 번역한 책이다. 에세이 저자는 무려(!!) 아인슈타인, 아놀드 토인비, 이사벨 아옌데, 헬렌 켈러, 콜린 파월, 빌 게이츠 등 역사에 이름을 남긴 명사들부터 주부, 교사, 언론인, 학생 등 일반인까지 다양하다.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예일대 법과대학원 학장이 된 고홍주 씨의 글도 실렸다. 에세이의 주제는 내가 믿는 이것(This I believe), 즉 자신만의 신념과 가치관으로 정해져 있다. 단, 종교적, 정치적 신념, 아집, 편견은 배제하고, 오로지 개인의 특별한 경험이나 성찰을 바탕으로 써야 한다. 

 

에세이는 하나같이 감동적이고 아름다웠다. 저자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친근하게 느껴졌고, 공감할 수 있는 대목도 많았다. 나는 또한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엮어낸 언론의 힘에 감동했다. 위기시에 여론을 선동하는 언론이 아니라 민중의 편이 되어 용기를 북돋아 주는 언론. 그런 언론이 얼마나 될까. 한때는 언론인이 되기를 꿈꾸기도 했지만, 민중의 등을 두드려주지는 못할 망정 민중이 등돌리게 만드는 언론을 보며 포기했다. 그런 언론에 비하면 <라디오 쇼>는 결코 '쇼(show)'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