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을 민음사 모던 클래식 시리즈로 만났다. 민음사의 모던 클래식은 과거의 유산이 아닌 살아 있는 고전, 현재진행형의 고전이라는 생각으로 기획되어 각국의 젊은 거장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 시리즈로 선정된 오르한 파묵은 얼마 지나지 않아 노벨문학상을 거머쥔다. 민음사의 모던 클래식의 선견지명이 통한 셈이다. 한 출판사에서 어떤 시리즈를 내 놓으면서 그 첫 스타트로 꼽은 작품을 선정하기 위해선 얼마나 힘든 과정이 있었을까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이미 내 책장에는 민음사의 모던 클래식이 열 권이 넘게 소장되어 있다. 하지만 번호 순서대로 읽지 않았기에 뒤늦게 찾아 온 <내 이름은 빨강>. 너무나 많은 시작, 도둑 신부, 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 에 이어 네 번째로 읽게 된 책. 믿음사의 고전 시리즈와 달리 현대적인 감각이 느껴지는 이 시리즈는 독자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오르한 파묵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듣게 된 후 오히려 좀 더 멀리 두었던 <내 이름은 빨강> 혹여 노벨문학상이라는 타이틀로 인해 너무 어려운 작품이 아닐까 하는 내 두려움이 작용한 것 같기도 하다.

이 작품은 2권으로 구성되었다.

1권에서는 총 33장의 소제목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그 이야기마다 화자가 다르다.

첫 장에 등장하는 ‘나는 죽은 몸’부터 신선하게 다가온다. 죽은 사람이 화자라니, 영혼이 등장한다 생각하기도 하지만 결코 그(엘레강스)는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작품 전반에 큰 사건의 시작을 알리며 에니시테의 그림을 둘러싼 세 명의 화원, 나비, 황새, 올리브를 유력 용의자로 내세운다. 그러나 이 외에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살인자라고 밝힌 화자가 등장하며 독자는 살인자가 과연 나비, 황새, 올리브 중에 누구일까 함께 추리하는 즐거움을 얻게 되기도 한다. 또한 술탄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그 당시 그림을 그리던 풍습, 세밀화의 제작과정 등 신기한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지금 명작으로 받아들여지는 서양화에 대한 그들의 시각을 접할 수 있다. 반면에 카라, 오르한, 살아있는 에니시테, 셰큐레, 나비, 황새, 올리브, 에스테르 등 사람이 화자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죽은 엘레강스, 죽은 에니시테가 화자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반면에 개, 나무, 금화, 죽음, 빨강 등 그림이 화자가 되어 등장하기도 한다.

당시에 사람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신의 시각으로 본 것을 그린다는 사명으로 서양화에서 볼 수 있는 원근법을 무시한 채 세밀화로 장인들의 그림을 반복적으로 복습했던 그들의 그림 이야기는 서양화를 신에 대한 무시, 술탄에 대한 배신으로 묘사된다. 그런 연유로 술탄의 외교적인 이유로 에니시테가 만들고 있던 책에 삽입되는 열 개의 그림을 개인적으로 맡았던 나비, 올리브, 황새와 그림에 금박을 입혔던 엘레강스. 이 네사람이 서로를 견제하던 중 엘레강스가 자신들의 그림의 신격모독을 고발할 것 같다는 연유로 엘레강스를 죽인다. 그리고 에니시테마저 살해하고 마는데….

2권에서 카라는 12년 전의 사랑하는 여인과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한다. 그러나 에니시테의 갑작스런 죽음은 셰큐레가 다시 시댁으로 들어가는 상황을 초래한다. 그럴 생각이 없는 그녀는 카라와 함께 계획을 세우고 아버지(에니시테)의 죽음을 숨긴 채 둘의 결혼을 감행한다. 그러나 그녀를 흠모하는 남편의 동생의 질투를 넘어서야 한다. 또한 카라는 술탄의 명을 받고 화원을 뒤흔든 살인사건을 주범을 찾으라는 명을 받고 화원장과 함께 범인을 물색한다. 세 명의 용의자 중에 그가 그린 그림의 특징을 좇아 그의 실체를 찾아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데…. 그러나 범인은 이 모든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에 말의 콧구멍을 이상하게 그리는 힌트를 쉽게 보이지 않는다. 나비, 황새, 올리브는 각자가 화자가 되어 등장하면서 또 다시 살인범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독자는 나름대로 그 세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살인범의 이야기에서 과연 그가 누구인지 추리해나간다. 추리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훨씬 흥미로워진 구성으로 독자는 이야기에 몰입한다.

드디어 드러난 살인자의 정체, 그리고 원근법을 두고 사실적으로 그리는 그림으로 변하는 시대로 진입하는 모습을 지켜봐야하는 사람들. 시대적 흐름과 사건을 다루며 오르한 파묵이 담아낸 <내 이름은 빨강>은 시대적 흐름을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상처, 아픔)을 보여주며 현대의 우리들에게도 생각할 것을 남겨준다. 시대는 항상 변하고 변함에 따라 상처받는 사람들은 생긴다. <내 이름은 빨강>은 그가 보여주는 많은 이야기들이 그랬듯이 이번에도 독자는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문체와 더불어 쉽지 않은 소재를 다뤘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그의 작품은 탐 낼만 하다.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없기에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특별함을 선사받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