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의 프라하의 묘지.

작가 움베르토 에코는 대중소설의 작가라는 이미지보다는 사상가, 철학자의 이미지가 강해 독자에게 흥미와 재미를 선사하기보다는 다방면의 지적 충만을 주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이런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장미의 이름>의 경우 어릴 때 접했던 기억이 나지만 재미있었다는 기억이 남아있지 않다. 아마도 내게는 당시 너무 어려운 책이었으리라.

이번에 만난 <프라하의 묘지>도 역시 움베르토 에코의 지적 매력이 가득한 책이다. 모든 역사적 배경을 깔아놓고 거기에 시모니니라는 단 한 명의 허구의 인물을 끼워 넣고 모든 사건과 관련되게 이야기를 구성했다. 시대적 배경이 19세기 중후반의 유럽. 당시의 역사적 지식이 전무한 내게는, 2권 뒤편의 옮긴이의 부록이 없었다면 어느 것이 허구이고 어느 것이 진짜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지경에 빠졌을 것이다.

<프라하의 묘지>에는 세 명의 화자가 존재한다. 소설의 화자, 시모니니, 달라 피콜라 신부.

화자에 따라 글씨체를 달리하며 소설이 진행되는데 처음에는 독특한 이런 구성 때문에 몇 번이나 앞뒤를 오가면서 읽었는지 모른다. 낯선 구성과 역사적 지식의 미비로 조금은 집중하기 힘든 초반부를 넘어서니 몰입이 자연스럽게 된다. 1권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이야기는 음모와 사기극을 보여준다. 후반부에서는 달라 피콜라의 신부의 정체가 탄로 난다.

시모니니와 달라 피콜라 신부가 일기를 함께 쓰고 그 사이에 화자가 정리를 하면서 사건을 이야기하는 형식인 <프라하의 묘지>. 여기에서 시모니니는 이중인격(해리성 증후군)의 증세를 보인다. 독자들이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다. 내가 알기로 이 병의 배경은 보통 큰일을 당했을 때 인격이 분리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1권 후반부에 달라 피콜라라는 신부가 실제로 존재했으며 시모니니의 사기행각을 두고 세상에 폭로하겠다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에 시모니니는 그를 살해하고 지하실 밑에 있는 하수도관에 그를 버린다.

<프라하의 묘지>의 매력은 음모론과 유럽 국가들의 첩보전, 정치전 등 서로를 속고 속이는 사이에서 시모니니라는 인물이 돈을 밝히고 그의 남다른 필체 모사 실력과 허구를 진실로 만들어 내는 능력 등으로 끝까지 살아남는 과정 등이다. 작가는 그 사이에 그의 넘치는 지적 유희를 독자들에게 알리기까지 한다.

책을 읽으면서 허구와 진실, 역사적 사건의 배경, 시대적 상황 등을 하나둘 검색하면서 이 모든 것을 아귀 맞게, 멋들어진 이야기로 만들어낸 작가의 능력에 탄복했다. 팩션소설의 유행 속에 움베르토 에코만이 보여주는 세계 최고의 기호학자, 언어학자로써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비록 정의롭지는 못하지만 멋진 캐릭터 시모니니를 만들어내고 독특한 구성을 보여준 <프라하의 묘지>는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는 없지만 지적 유희와 멋진 캐릭터, 신선함을 만끽할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결심한 것이 있다면 다시 한 번 <장미의 이름>을 읽고 싶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 책도 재밌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