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친구가 내가 책을 좋아하기 시작했다고 말하니 권해준 책이었다. 한참을 벼르고 있다가 내게 와준 책이다. 그런데 꼭 그런만큼 인상깊고 문장에서 깊은 내음이 나는 소설이었다. 그렇다. 정성들여 단어 하나하나를 선택했다고 느껴졌다. 책을 많이 읽지 않아서 그랬겠지만 소설인만큼 처음보는 단어가 종종 등장했다. 책을 보다가 국어사전을 찾아봐야할까보다 잠시 고민했지만 느낌대로 우선 책을 읽어나갔다. 이 책은 단숨에 읽어버릴만큼 흡입력을 머금은 책이었다. 도대체 제목에서 어떤 내용일까 연상이 잘 안되었고 줄거리조차 읽지 않았기에 더 새로웠나보다.

작가 한강의 책은 처음이었지만 그녀의 소설이 좋다는 사람은 많았다. 다른 북피니언님이 테마로 만들만큼 그녀는 책을 많이 내었고 아버지도 유명한 작가란다. 아버지가 작가라 그저 그녀가 작가가 되었다기보다는 집에서 아버지가 책을 읽어나 쓰는 모습을 항상 보았기에 그것에 영향을 받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나중에 내 아이가 생기면 작가가 되길 바라는 욕심같은 건 안내겠지만 아이 앞에서 꼭 책을 자주 읽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바람이 있다. 문학공부를 하고 책을 쓰고 아이 엄마도 되고 상도 많이 탄 그녀가 이 소설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의외로 상처를 가득 가진 인간들의 이야기였다. 과연 이런 것을 경험해보지 않고 어떻게 글을 쓸까 자문해본다. 

씁쓸하지만 여기서 나오는 두 여자 주인공 L과 E는 정반대의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이 가진 상처의 크기는 누구 것이 더 고통스러웠다고 견주어볼 수 없을만큼 커다란 것이었다.  외모의 상처가 마음의 상처가 되고 아물새도 없이 계속 그 자리에 상처가 나서 평생을 고통스러워하듯이... 그녀들은 항상 그 상처를 숨기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정운형은 예술가로서 특이하게 그녀들의 손을 시작으로 얼굴, 몸까지 석고로 뜨게 된다. 그가 묘하게 느끼던 그녀들의 껍데기. 그는 그녀들의 상처를 떠낸 것이었을까? 정운형 또한 어린 시절 상처를 가득 안고 살아온 인물이다. 그가 거기서 헤어나올 수 있었던건 그의 예술활동을 통해서였다. 

이렇게 세 사람의 관계를 통해 인간 내면의 상처가 얼마나 한 인간의 삶에 끊임없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작가는 소리치지 않지만 강하게 이야기한다. 난 특히 L이란 여자의 캐릭터가 내 마음이 헛헛할 정도로 강하게 다가왔는데 자신의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식이장애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그녀의 아픈 사연 때문이었다. 그런 여성을 앞에서 보는 듯한 작가의 섬세한 묘사로 아픔이 더해졌다. 거구의 체격을 가진 그녀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 자신이 음식을 먹는건지 음식이 자신을 삼켜버리는건지 도통 알 수 없다며 괴물같이 먹어대던 그녀때문에 내 마음도 아팠다. 또한 E란 여성은 아름다운 외모와 지성을 가졌지만 그녀의 내면엔 어린 시절 자신의 손가락이 여섯개여서 육손이로 불리던 기억이 켜켜이 쌓여있고 그때 그녀를 바라보던  따가운 시선에 역시 묶여있다. 아무리 가리려고 해도 그녀의 차가운 손을 보고 있노라면 그 비밀이 폭로될 것임을...그녀는 항상 두려워한다.

소름끼치도록 남의 시선에 따라 살았던 어머니에 대한 차가운 기억, 그것이 정운형의 어린 시절에 지독한 상처를 그에게 남겼고 어머니의 남자에 의해 유린당하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가 쳐다보기 역겨울 정도로 먹어대며 자신만의 도피처를 찾았던 L 역시 가슴엔 커다란 구멍을 가진 채 살아왔고 그런 괴물같은 자신의 몸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싫어서 식이장애를 선택한다. E는 육손이라는 놀림 속에서 여섯번째 손가락이 사라진 지금까지도 손가락이 사라진 상처의 자리를 숨기기 위해 철저하게 자신을 연출하는 법을 터특했다. 

이들이 제발, 이 커다란 상처더미에서 더 이상 헤매이지 말고 따스한 양지로 나올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에 작가는 분명 그런 메세지를 우리에게 보냈다고 느끼면서 마지막 장을 덮었다.


2009-01-29  좋은 소설을 읽었지만 멋진 서평은 쓰지 못해 아쉬움을 남기며...





그대의차가운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