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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눈물이 나는가 보다.

나는 정치를 모른다. 관심도 없다. 그렇게 모른채로 살아도 되었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간판이 덜렁거리는 멕시칸 치킨 집에서 맥주 한잔에 피로를 풀던 이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10대에 그토록 바라던 어른의 길은 너무나도 울퉁불퉁 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시점에 터진 IMF는 인생의 방향을 틀어버렸다. 모든 것이 원죄처럼 느껴졌다. 경기가 좋지 않아 꿈을 접어야 했고, 책임감에 생활전선에 뛰어 들었다. 억울했다. 그게 다 였다. 그때의 나는 너무 몰랐다. 그저 두려웠고 하루 하루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나이 먹는 두려움에 빠져 있었다.

어느덧 30대. 시간은 날 뛰던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故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나는 죄책감에 몸서리 쳤다. 그를 반대하는 이들의 편협한 책을 읽고, 세상을 그리 보았다. 욕 했다. 많이도 욕했다. 17대 대통령 선거 날, 나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에 현혹 되 이명박 대통령을 뽑았다. 후회했다. 처음으로 불안을 느꼈고, 뭔가 잘못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신문을 보기 시작했다. 나꼼수가 나왔을 때 나는 열광했다. 눈높이 해설과 참여정부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께 묻고 또 물으면서 내가 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이 소설은 그런 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팩트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가는 근현대사 10년을 그리고 있다. 잃어버린 그 시간에 우리가 버린 것은 '내일'이었다. 미래를 담보로 한 오늘의 안위. 아무 연고도 없는 부평 대우자동차 해고자들을 위한(해외매각) 투쟁, 미군장갑차에 깔려 죽은 효순이 미순이를 기리는 추모촛불 행사, 이라크 파병 반대운동, 용산참사, 대학교의 탄압에 맞서는 청소노동자들의 목소리, 월드컵 뒤에 감춰진 대공분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란, 자본주의의 시장경제가 잠식한 대학교의 변화는 저지 하려 했던 이들의 희생으로 그 속도를 늦추었을 뿐 변화는 막을 수 없었다.

결국 소설 속 인물들의 치열한 논쟁은 곧 삶에 대한 투쟁이었다. 그 삶에 '나'가 아닌 '우리'가 있다는 것이 다를 뿐 이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 어리버리 했던 그들이 뜻을 품고, 그것을 실천하며 약자를 일으켜 세워주기 위해 촛불, 쇠파이프, 화염, 돌멩이를 손에 쥐고 거리로 나선다. 나에게 그런 용기가 있었던가? 나는 숨었다. 귀찮았고,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제...그들의 절박함이 보인다.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무관심도 알겠다. 진우처럼 우리는 한쪽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죽느냐 사느냐' 문제에서 우리는 간신히 한 다리를 걸쳐 놓았을 뿐이다. 왜 태의는 진우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을까? 진우는 그런 태우를 어떻게 안을 수 있었을까? 대석 형, 미주, 현승선배, 경수 그들의 부러진 활은 현정부에 대한 포기일까? 인간의 양심은 두부처럼 깨지기 쉬운 것 일까? 왜 그들은 유기견에게 '사람'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을까? 자유를 향해 발버둥 칠수록 얽매여 피를 흘리던 개의 모습을 빗대어 조롱했던 것 일까? 이제는 그 경계마저 희미하다. 내가 미쳐서 세상이 이상하게 보이는 것인지, 아님 그 반대인지를.

그냥...이런 생각이 든다.

내 자식들이 커서 그날의 일들을 물을 때, 나는 입을 열수 있을까? 그들에게 도전하는 삶을 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나도 우리의 윗세대와 다를바 없다. 나의 나태함과 무능함을 숨기고 자식들의 인생을 쥐고 흔드려는 독재자 근성.

시간은 흐르는데, 정치는 역행한다.

사람은 똑똑해지는데 인성은 사라진다.

나는 있는데 너는 없다.

돈은 버는데 가난하다.

배는 부른데 춥다.

함께 인데 외롭다.

후, 그럼에도 나는 이 소설에서 향수를 느꼈다. 기록되지 못해도 그 어딘가에, 살았었다는 안도 같은 것... 일까? 어쩌면 '태의'는 나의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에게 아무 말도 못하는 것 일지도. 나중에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대한민국의 시간은 이렇게 흘렀다고.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라도 해도, 그 계란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