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이 여자..참, 힘들었겠다.'

첫장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소통과는 거리가 먼 글 쓰기 방식. 정리 되지 않은 감정.

만신창이의 어제. 암호같은 오늘. 전쟁 속의 내일.

희망도 빛도 없는 하루를 혹사 시켜야지만 잊을 수 있었던 상처.

6살이었던 그녀를 공포와 폭력 속에 밀어 넣었던 아버지.

그녀는 절망했다.

믿을 수 없는 현실..

잡고 싶었던 부모의 관심과 사랑.

보호 받고, 사랑 받아야 할 곳에서

아빠는 어린 딸의 침대로 찾아가 은밀한 곳을 만지며 유린 했다.

그런 사실을 묵과한 엄마.

이것이 그녀가 기억하는 가족이다.

사랑이 필요했다. 결핍은 말라 비틀어진 사과처럼 그녀의 삶을 조여왔으니까.

발버둥 칠수록 마약과 섹스에 빠져들었다. 하루라도 섹스 없이는 살 수 없었고,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를 사랑했다. 교수, 놈팽이, 건달.. 가리지 않았던 그들과의 섹스를 통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받았다. 방탕한 생활의 연속.

그러던 어느날,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수 없으나..삶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강간과 폭력, 전쟁과 기업인들의 횡포로 설 곳을 잃어버린 힘 없는 여성들을 보며 그녀는 같은 아픔을 느꼈고, 그들과 연대하면서 비로소 벌어진 상처를 직면하게 됐다. 특히나 이 책은 자궁암 판정을 받고 7개월이라는 치료과정에서 '버리고자 했던 나'와 '찾고자 했던 나'의 조우를 통해 콩고의 현실과 상처받은 현지 여성의 고통을 자신의 몸에 빗대어 발언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 임신한 자신의 소중한 친구의 자궁을 군인이 칼로 베어 쩍 벌리자 모습도 제대로 못 갖춘 태아가 거기서 떨어져 나오는 것을 다시 두 눈으로 보면서 비명을 지른다. 빛도 공기도 세균도, 군복을 입은 시끄러운 강간범들도 맞을 준비가 안 된 태아. 탯줄이 여저히 매달려 있는데, 콩고의 땅 위로 온통 피를 흘리는 엄마에게 매달려 있는데, 여자들이 보는 앞에서 군인들이 탯줄을 잘라 무슨 공처럼 공중으로 던져버린 그 태아의 엄마. 아직 제대로 자라지도 못해 고통을 느낄 수도 없고, 크게 울거나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는 태아. 이미 자신들의 아기들은 빼앗겨 살해당하거나 목이 졸려 죽었거나 숲 속에 던져진 그 여자들 앞에서. 군인들이 물이 끓는 냄비에 태아를 던져놓고, 그 안에서 끓는 살을 한 명이 쿡쿡 찌르더니 칼로 찌른 채 냄비에서 꺼내 여성들에게 들이민다. 그들이 입이 타들어간다. 이걸 안 먹으면 죽는다.' (216~217쪽)

동부 콩고에서는 여성 수천명이 강간을 당해 누공이 생기고, 질과 방광의 조직으로 필요한 만큼의 피가 공급되지 못해 조직이 죽고 구멍이 생겨 그 사이로 소변과 대변이 질질 나온다고 한다. 작가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괴로웠던 것 같다. 그녀의 삶을 들여다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불완전한 말을 하며 스스로를 구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질'에 대한 집착이 구멍으로 연결되고 그 구멍이 누공에서 배설되는 사산 된 태아로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현실은 끓는 냄비와 같았기 때문에 누더기 같은 자신의 처지는 어찌 해 볼수가 없는 성질의 것이라고 보았던 것 같다. 낙태와 유산의 경험이 그녀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회생 불가능한 대지의 현실과 다를바 없었을 테니까.

'이 여성의 질은 미래의 지도였고, 나는 나 자신이 세계의 구멍 속으로, 내 안의 구멍 속으로, 아빠가 밀고 들어와서 내가 길을 잃었을 때 생긴 그 구멍 속으로 추락하고 있다고 느꼈다. 근친상간으로 사회적 세포막이 찢겨 나갔을 때 생긴 그 구멍으로, 이 여성의 구멍 속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항상 추락해왔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58~59쪽)

안을 들여다 볼수록, 구멍 안으로 들어 갈수록 또렷한 기억. 괴롭지 않았을까? 그래서 자궁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콩고 여성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선한 얼굴 뒤에 감춰진 잔인한 폭력에 그녀는 여전히 괴로웠고 벗어나기 위해서 '환희의 도시'를 건설해 대안적 삶을 살고자 했던 것 같다. 또한 '브이데이'운동을 창설해 다양한 운동을 벌이며, 다른 여성들의 몸과 그 몸에 가해지는 상처에 관심 갖도록 힘쓰고 있다. 성폭력의 아픈 기억에 기인한 상처는 트라우마처럼 몸을 배척하게 만들었고 가족과의 괴리감을 만들었다. 자신의 몸을 내버리는 것은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외면하는 것이었고, 회복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상실하는 것 이었다. 서서히 죽어가는 것.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다르다. 암을 극복했으며, 힘든 와중에서도 엄마를 용서하며 상처받은 자신을 끌어 안아 주었다.

감당하기 힘들었던, 그래서 놓치고 말았던 시간을 '함께' 나누며 치유하는 모습을 통해 그것이 '나 보다 못한' 이들에 의한 위안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누구든, 누구라도 필요한 인간의 외로움은..참 깊다. 암이라는 무서운 병마와 싸우며 써내려간 책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색적이이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는 삶의 목적을 보여주는 것 같아 의미있는 시간이었다.